헌재소장 김이수 지명이 상징하는 것

문재인 대통령, 김이수 헌재소장 지명

문재인 대통령이 김이수 헌법재판관을 헌재소장에 지명했습니다. 비서실장 등을 인선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대통령이 직접 기자회견을 통해 이 사실을 밝혔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뒤, 저는 이것이 산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문재인이 준 대답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문재인은 인권 변호사 출신이고, 시국 사건이나 노동 인권, 기타 소수자 인권 문제에서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내 왔습니다.

그러나 정치인으로서 문재인의 인권 행보는 많은 사람을 실망시키기도 했습니다. 특히 지난 대선 토론회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군대 내 동성애로 전력이 저하되는데, 동성애를 찬성하는가”란 질문에 “동성애 반대한다”는 답변을 하여 소수자 인권 운동 진영의 비판을 사기도 했죠. 이후 발언에 오해의 소지가 있었으며 송구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히긴 했습니다만…

 

구 군형법 92조의 5, ‘계간이나 그 밖의 추행’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김이수 헌재소장 지명자는 바로 그 홍준표의 질문에 대해 나름의 답변을 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홍준표의 얼굴을 보고 한 대답은 아니었지만요.

작년 7월 헌법재판소는 구 군형법 92조의 5, “계간이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조항 중 “그 밖의 추행” 부분이 헌법에 위배되는 바가 없다며 합헌 결정을 했는데요.

이는 오늘날에도 군형법 92조의 6에 “(군인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으로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네, 이 조항은, 동성애 처벌법입니다. 최근 모 대위가 이 혐의로 구속되었고, 군 검찰은 징역 2년을 구형했죠. 그는 군 당국이 ‘동성애자 색출’ 작전을 벌이고 있다는 논란 와중에 구속되었으며 합의에 의한 성관계를 맺었다고 시인했다고 합니다.

여하튼 당시 헌법재판소는 5대 4로 합헌 결정을 내렸는데, 반대의견을 낸 4명의 재판관 중 한 명이 김이수 재판관입니다. 당시 소수의견은 이 조항의 ‘그 밖의 추행’ 부분이 군인간의 추행만 처벌하는 것인지, 일반국민을 상대로도 처벌하는 것인지 불확실하며, 군영내 동성간 집단숙박을 하는 군의 특수성을 고려한 것이라 보더라도, 이 조항만으로는  행위의 시간, 장소에 대한 규정이 전혀 없어 군영 외에서 벌어진 행위 또한 해당하는지 불명확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죠.

따라서, 군기 유지를 위해 남성끼리의 추행을 금지해야 한다면 여성끼리의 추행, 이성 간의 추행도 함께 금지해야 하며, 합의에 의한 음란 행위를 형사처벌하는 것이 불가피하더라도 이는 군대 안에서의 음란행위만을 처벌하도록 명확히 규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이 결정은 논란의 핵심인 ‘항문성교(계간)’에 대한 것은 아니었으나, 당시 소수의견은 이 조항 전부의 문제점을 명확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김이수 재판관 또한 아마 조항 전부에 대해서도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시겠죠, 홍준표 씨? 이런 이유로 군내 동성애자를 색출하고 처벌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성애자들이라고 돼지발정제를 먹이는 게 합법이 될 수 없듯이, 동성애자라고 영외에서의 합의하의 개인적인 관계가 불법이 되어선 안 된다는 거지요.

 

대통령으로서의 대답

누군가는 고작 이런 이유로 김이수 지명이 소수자 인권 문제에 대한 문재인의 대답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김이수는 헌법재판소 내부의 이념 지도에서도 거의 무조건 가장 끝에 있는 ‘진보’로 분류될 정도니까요. 물론 이명박근혜 9년간 계속된 헌법재판소의 보수화 경향도 고려해야겠지만…

그는 또한 박근혜 탄핵 심판 사건에서 보충의견을 통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박근혜가 국가위기 상황에 청와대 상황실에 위치하지 않고, 심지어 집무실에 출근하지도 않은 채 전화로 원론적인 지시만을 내림으로써 성실히 직책을 수행할 의무를 위반하였다고요. 세월호 유족과 여전히 그 상흔을 안고 사는 우리에게 마치 위로처럼 들렸죠.

논란이 될 만한 사안에서도 그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사건에서는 정당의 강령 등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지 않는 한 일부 당원의 활동을 정당 전체의 책임으로 귀속시킬 수 없다고 소수의견을 냈습니다. 전교조 법외노조 헌법소원 사건에서는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든 근거가 된 법률이 위헌이라 판단하기도 했죠.

대통령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물론 대통령중심제에서 대통령직의 가치는 굉장히 많은 것을 바꾸어 놓을 수 있지만, 입법은 입법부의 몫이며, 법에 대한 판단은 또 사법부의 몫이어야 하겠죠. 셀프 개혁은 안 되겠지만, 검찰 개혁은 법조계가, 국정원 개혁은 또한 정보당국자들이 주축이 되어야 할 테고요. 다만 대통령은 인사 등을 통해 그 방향을 조율해나가는, 일종의 조율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근음(root)으로, ‘김이수’라는 음을 조율한 셈입니다. 헌법재판소의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이 근음을 기반으로 쌓아 올려질 겁니다. 현 헌법재판소 내에서 가장 진보적인 재판관이며, 소수자 인권 문제에서도 가장 진보한 입장을 낼 것으로 보이는 사람. 이 정도면, 정말 잘 하고 있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헌재소장 김이수 지명이 상징하는 것”에 대한 한개의 댓글

  1. 저도 정확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통진당 사건은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빅브라더 시대의 초입에 서있는것 같아
    정말 어지러웠지요.
    그때 김이수 재판관의 의견전문을
    읽지 않았더라면 세월호에 이어
    결국엔 끔찍하게 절망스러웠을 거에요.
    대표직에서 물러난 후 문재인씨의 행보나
    언론에서 정말 짧게!!! 드러난 언행에서
    바로 이런 일들을 해줄거란, 해줬으면
    하는 소망이 생겨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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