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지한의 학생회 “정책국”은 대학생을 위한 교양 특별강연을 의욕있게 추진하고 있으며, 첫 번째로 김규항 씨를 초청, “가로로 보는 세상, 세로로 보는 세상”이란 제목의 강연을 열기로 했다. 목적은 단순하다. 적벽돌로 지어진 이 좁아터진 학관이 좀 더 넓어지기를, 상지한의의 사람들이 좀 더 넓고 환한 한의학을 만들어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한의과대학의 커리큘럼은 시쳇말로 “빡세다”. 아침 9시에 시작해 저녁 8시가 되어서야 수업이 끝나는 괴로운 커리큘럼 속에 다른 생각은 할 겨를조차 없다 보니,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좁아터진 한의학의 세계 속에 갇혀서 한의학이 완벽한 학문[完學]이라는 되먹잖은 소리를 하고, 침 좀 쓴다는 “선생님”들에게 머릴 숙여가며 침 쓰는 법을 배우지만 한의학이라는 학문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어떠한 고심도 하지 않는다. 어떤 학문적 기반 위에 침술이 있고 한약이 있는지 공부하려 하지 않으니, 학(學)을 배우지 않고 술(術)만을 원하는 꼴이다. 학문 그 자체에 대한 고민 없이 그저 침 쓰고 약 쓰는 기술만 배워 나가길 바라는 400명이 거주하는 이 학관, 수구 꼴통과 앵똘레랑스의 장(場)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좁고, 어둡다.

의대나 한의대나 마찬가지이지만, 사람들은 “생명을 구한다”는 숭고한 대의 때문에 이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배치표를 훑어보고, 졸업 후의 소득 수준을 꼼꼼히 따져보곤 “가장 경제적인 사고방식에 따라” 이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니 좁고 어두운 한의학관의 모습도 당연한 것일 테다. 하지만 나는, 그리고 그들은 이미 의사로서의 길을 선택했다. 시작은 초라하더라도 그 끝은 장대하여야 한다. 한의학관은 그 “경제학적 인간” 들을 추스려 “의학적 인간” 으로 다시 만들어야 한다. 과학의 얼굴과 인간의 얼굴을 동시에 가진 진짜 의사로 키워내야 한다. 하지만 지금 한의학관은 사람들을 전형적인 돌팔이로 재창조해낸다.

김규항씨가 해답이 될 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지식인들에 평판을 내릴 정도로 잘난 인간이 아니니까. 다만 충격을 줄 수는 있으리라 확신한다. 나의 좁은 앎 속에서 그는 가장 “강렬한” 지식인이다. 열린우리당은 물론이거니와 민주노동당조차 대안이 될 수 없다 말하는 (당연한 얘기지만,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따위는 입에조차 담지 않는) 그를 강렬하지 않다 한다면, 그 누구를 그 자리에 대신 세울 수 있을 것인가. 그렇기에 “세상을 나누는 기준은 국가보다 계급”이라는 김규항씨의 한 마디가, 그리고 그 인상이 그 많은 “선생님”들의 침술과 약 쓰는 법보다 더 값진 한의학 공부가 되리라는 생각을 한다. 아마도 그러할 것이다.

  7 개의 반응

  1. 와 저도 꼭 듣고 싶군요. 의학 쪽하고는 거리가 멀지만…
    김규항 씨 정말 하드코어죠. 킥킥킥.

    • 그게요. 우리 학관의 사람들이 그 강렬한 말들을 감내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ㅎㅎ

      들으러 오실래요? :D

  2. 안녕하세요 미디어몹입니다. 예인즈님의 상기 포스트가 미디어몹에 링크가 되었습니다. 링크가 불편하시면 아래 리플로 의사를 표시해주세요. 해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즐거운 포스팅되시기를 바랍니다.

  3. 한의대, 교대하고 비슷하네요. 하지만 많이 들으러 가셨을 꺼 아닙니까. 제가 주최가 아니고 들으러 가는 입장이지만 솔직히 걱정됩니다. 좋든 싫든 얼마나 들으러 올지. 총학 외에 한 이십명만 와도 성공일 정도로 관심이 없습니다. 솔직히 걱정입니다.

    • 교대 다니시는군요. :)

      흔히 법률과 교육, 의료 세 개 분야를 공적인 관리가 필요한 분야로 본다고 합니다. 자격 없는 이가 함부로 자행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죠. 잘못 없는 사람이 잡혀들어가거나, 돌팔이로 인해 건강에 치명적인 해가 생기거나, 아이들이 잘못된 지식을 배우고 그릇된 길로 들어서거나…… 그래서 이 세 분야가 사법고시, 의사 국시(그리고 의대 시스템) 등과 같은 법적 장치를 만들고 배타적으로 작동시키잖아요?

      하지만 걱정하시는 바와 같이, 과연 교대에 다니는 사람들이 그런 배타적 시스템 내부에 있을 자격이 있는가…… 의구심이 듭니다. 교육자는 반드시 다양한 경험을 해야만 하고, 김규항씨 특강과 같은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하죠. 다양한 시선과 고민이 있어야만 아이들을 가르칠 선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고민이 없다면, 배타적 시스템 밖에 있는 “돌팔이 선생”들과 교대를 나오고 시험을 통과한 “진짜 선생” 들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애들에게 함수 가르치고, 사회 가르치고, 과학 가르칠 능력이야 굳이 “진짜 선생”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있는 것인데…..

      의대, 한의대도 마찬가지 실정이기 때문에, azreal 님의 걱정에 적극적으로 공감하며 긴 댓글을 썼습니다.

      아, 우리 한의대 특강에서는 제가 1학년에서 4학년까지의 강의실을 모두 강방하며 홍보를 했답니다. 그래도 결국 100명이 채 안 온 것 같지만, 하기사 400여명밖에 안 되는 크지 않은 단위니 그 정도면 꽤나 적극적 참여였다 할 만 하겠죠? :)

    • 우리 학교 총학은 그 흔한 강방 하나 안때리는군요. 아무리 힘없는 총학이라지만 절망할 뿐입니다.

      그리고 교대에서 저런 강의를 한다고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 어쩌구 하는 아이들을 보면 정말 우리 나라가 너무 공부만 시켰던 것 같아 한스럽습니다.

    • 어느 학교나 총학은 지탄의 대상이죠. ㅎㅎ 총학이라고 인력이 넘쳐나는 건 아니니, 강방을 다 돌기엔 무리가 있었을 겁니다. 물론, 그게 무리라면 (김규항씨의 옛 글 몇 개를 모은) 자료집같은 거라도 미리 나누어주면 좋았겠지만……

      누가 그랬었어요. 어떤 이들이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하지만, 사실 그 주장의 속뜻은 “신자유주의와 천민 자본주의 외 모든 이데올로기를 거부한다”는 의미이거나, “사회학을 거부한다”는 의미라구요. 적극 동감했습니다. ㅎㅎ

 댓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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