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에 지배당하지 말아요

양자구도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양자구도’ 이야기가 나온다. 문재인 대 안철수로 대선 구도가 압축될 경우 문재인이 41~2%, 안철수가 37~9% 가량의 지지율을 얻으며 양자구도가 성립한다는 것. 대선 정국 초반에 안철수가 “문재인 대 안철수 싸움이 될 것”이라고 했을 때 다들 비웃었는데, 정말 그렇게 되어가는 분위기다.

존재감을 잃었던 안철수가 급격히 치고 나오는 데는 역시 반문정서가 큰 역할을 한 걸로 보인다. 여론조사는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지지자들이 문재인을 막기 위해 안철수로 결집하는 현상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실제 문재인이 자력으로 국민 과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양자구도가 실제 이뤄지기만 한다면 어대문도 철지난 말이 될 것이다.

 

반문정서

반문정서에는 근거가 없다고들 한다. 참여정부가 호남 인사를 소외시켰다는 얘기는 실제 근거가 빈약하며, 고령층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특별한 이유 없이 문재인은 빨갱이라거나 하는 이유를 대며 무조건 문재인을 미워한다. 이런 반문정서는 문재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쉽게 극복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반문정서에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선거 전략에 있어 지방 정책 미비로 호남 소외론에 불을 붙였고 국민의당 분당 사태를 낳았다. 대북송금 특검은 여전히 큰 상처로 남아있다. 실제로 문재인은 대북 유화책을 폄으로써 강경파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문재인의 일부 지지자들은 극단적인 언행으로 부동층을 떠나보내고 있다.

이건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일단 당장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 지지자들의 행동이다. 많이 늦긴 했지만, 포용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 개별 지지자들의 행동을 어찌 할 순 없겠지만, 극단적 언행으로 선동하는 몇몇 친문 성향 팟캐스트는 본격적으로 비판이 필요하다. 이들의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지만, ‘문재인 지지자들은 극단적이다’ 라는 막연한 이미지를 퍼트리기에는 충분하다.

 

아름다운 경선

문재인 지지자들은 억울할 것이다. 호남에서 문재인이 60% 지지율로 1위를 차지하자, 2, 3위 주자의 지지자들은 격앙된 목소리로 “부정선거”를 외치며 경선 자체가 원천 무효임을 주장했다. 분위기는 패배를 인정할 수 없다는 분노로 가득찼다. 일부 안철수의 이름을 연호하는 일까지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아름다운 경선을 주문하지만, 우스운 소리다. 다른 정당을 봐도 그렇다. 홍준표와 김진태는 서로의 피의사실을 공격했고, 김진태는 홍준표에게 좌파란 낙인을 찍었다. 국민의당은 경선 방식을 둘러싼 내홍에 당대표가 대선주자들을 ‘죽이고 싶었다’는 글을 남겼다.

경선은 다툼이다. 얻거나 잃거나의 싸움이다. 지지자들은 언제나 시끄러웠다.

그래서, 내 눈의 들보를 보지 않고 상대 진영 지지자들만 문제라는 양 말하는 것 또한 불편하다. 문재인 지지자들 중에 이상한 사람들 많다. XXX 라든가 OOOO 라든가 하는 이상한 팟캐스트들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문죄인이 적폐네 만악의 근원이네 하는 이재명 안희정 지지자들도 많다. 손가혁 같은 곳도 있고, 안희정 캠프의 박영선은 자기 당 지지자들을 향해 문빠가 어쩌고 하며 멸칭을 뱉은 적도 있다.

열혈 지지자들이란 사람들은 다 그렇다. 극단적인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괴물에 지배당하지 말아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극단적인 광기에 휩쓸리지 않는 것, 그 광기를 광장에서 배척하는 것이다. 극단적인 사람들은 그들끼리 놀라고 놔둬야 한다. 그게 우리를 대표하게 두어선 안 된다. 스스로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유권자라 생각한다면, 그 일부의 광기에 자신 또한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사라 실버맨이 여기 있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OOO가 아니면 자폭하겠다고? 택도 없는 소리!”

경선이 문재인 측으로 기울고, 안철수와의 양자구도가 성립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자 뒤늦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우스워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반대로, 지금이 아니면 이런 얘길 언제 할 수 있겠나. 만일 안희정이 1위 후보였더라도 같은 이야기를 해야 했을 것이다. 안희정 지지자들은 포용력을 발휘하여 문재인 지지자들을 보듬어야 한다, 모호하고 이상한 ‘연정’ 발언을 구체적으로 가다듬고 문재인 측을 국정의 파트너로 모셔야 한다, 뭐 이런 얘기들 말이다.

자유한국당-바른정당-국민의당의 ‘노골적이지 않은 연대’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다. 노골적으로 단일화를 주장하면 ‘호남당’인 국민의당과 ‘TK당’인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이 융합될 수 없으니,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측이 후보를 내지 않거나 은연중에 안철수에 힘을 몰아줌으로써 문재인-민주당 정권을 막는다는 시나리오다.

실제로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안철수가 보수표 결집으로 이기는 것도 가능해 보인다. 끔찍한 일이다. 안철수가 끔찍한 후보라서가 아니라,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라는 국정 파탄의 주범이 끝내 여전히 권력의 일부를 손에 쥔다는 것이 끔찍한 것이다. 그 끔찍한 괴물을 막고자 한다면, ‘아름다운 경선’ 같은 우스운 동화는 찢어버리고, 대신 우리 스스로가 경선 과정에서 탄생한 괴물에 지배당하지 않도록, 그 광기어린 자들이 광장의 주류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단속해야만 한다.

괴물이 우릴 지배하도록 놔두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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