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빨간 아이폰이 아니다

미려하기로 이름난 애플 디자인의 힘은 가장 기본적인 것들로부터 나온다. 점, 선, 면, 비율, 색, 소재, 뭐 이런 것들. 변태적일 정도로 이런 기본적인 요소들에 집착함으로써 미니멀리즘으로 대표되는 애플 디자인은 완성된다.

요즘에는 다른 회사도 만만찮게 신경을 쓰는지라 애플만의 독보적인 지위가 다소 흔들리는 듯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애플은 선두주자고, 애플이 새로운 ‘색’을 선보이는 것만으로도 관련 업계의 유행이 뒤바뀐다. 최근으로 따지면 아이폰 7의 ‘제트 블랙’ 같은 경우. (내 폰이 제트 블랙이라 이런 말 하는 거 아님.)

흔해빠진 빨간 색에 사람들이 이토록 열광하는 것도 괜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 빨간 아이폰의 핵심은 그저 색이 빨갛다는 것만이 아니다. 이 물건은 한정판이다. 특별한 이름이 붙어 있다. (프로덕트)레드.

‘레드’는 기부 캠페인이다. 2006년 밴드 U2의 보컬리스트 보노와 사회운동가 바비 슈라이버가 다음 세대는 에이즈에서 자유롭기를 바라며 만들었다. 이를 위해 그들은 국제적인 기금을 조성했고,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내놓은 (프로덕트)레드 상품이 판매될 때마다 일정액이 이 기금에 모인다. 이렇게 모인 금액은 전액 HIV/에이즈 프로그램에 투입된다.

여기엔 스타벅스, 코카콜라, 갭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글로벌 브랜드들이 동참했다. 애플 또한 그들 중 하나. 세계 최대 시총 기업답게 상당한 몫이 애플로부터 나온다. 애플은 ‘레드’가 시작된 2006년부터 이미 이 캠페인에 동참해왔다. 이 때 나왔던 것이 아이팟 나노 2세대 (프로덕트) 레드다. 겁내 이뻤다. 하지만 난 돈이 없어 못 샀지…

아이팟 나노 2세대 이후 애플에서 나온 모든 빨간색 제품이 (프로덕트) 레드 연관 상품이다. 세계 음악 시장을 장악했던 아이팟 나노가 꾸준히 빨간 색 제품을 내놨고, 아이폰/아이패드 용 케이스나 애플 워치용 밴드 등 다양한 악세서리도 (프로덕트) 레드로 나왔다. 맥 프로도 나온 적이 있다.

아마 아이폰 7 (프로덕트) 레드는, 이 캠페인 사상 가장 큰 돈을 ‘레드’를 위해 기부하게 될 것이다. 자타공인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가전기기 아닌가.

주위에 흔들며 자랑할 수 있는 멋진 색깔의 신형 아이폰을 구입함과 동시에 당신은 HIV 감염인 / 에이즈 환자를 위한 기금에 거액을 기부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당신이 손해볼 건 하나도 없다. 그 기부액은 애플의 수익에서 빠져나갈 테니까.

 

에이즈에 대한 인식은 많이 바뀌었다. ‘레드’ 캠페인이 시작됐을 때도 그랬고,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난 지금은 더욱 그렇다. 에이즈는 천형이 아니다. 징벌이 아니다. 죽을 병도 아니다. HIV에 감염되었다고 해서 모두 에이즈 환자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편견과 맞서 싸워야 하는 병이다. 한국에서는 상황이 좀 심각하다. 에이즈 전문 요양병원이라던 곳에서 환자 인권 침해 의혹이 불거졌고, 그 원장은 갖은 마타도어로 감염인들과 환자들을 성행위 중독자, 곧 죽을 사람처럼 묘사한다. 인터넷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그의 강연은 의료인의 그것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비전문적이며, 비윤리적이고, 왜곡과 거짓으로 가득하다. 그는 기독교, 특히 개신교계 인물이다.

개신교계 미디어에서 에이즈를 동성애자를 공격하는 소재로 쓰는 현실은 끔찍하다. 예수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탄과 독사의 자식들을 보는 것 같다. 특정 질병에 고위험군이라는 것만으로 누군가를 비난한다니, 정말이지 히틀러같은 적그리스도나 생각할 법한 일이 아닌가. 이에 그들은 전략을 선회한 것 같다. 에이즈에 국가 예산이 많이 드니까 동성애자들은 나쁜 놈들이라고. 오, 신이시여, 이게 지금의 교회입니다.

개신교는 동성애 반대라는 종교적 교리를 강제하기 위해 HIV 감염인 / 에이즈 환자들을 가장 사악한 방식으로 공격하고 있다. 낯뜨거운 일이다.

 

 

약자들의 편이 된 것은, 신의 자애를 노래하고 이웃을 사랑할 것을 설파하던 종교가 아니었다. 그저 끝내주는 빨간색 제품을 만들고 이 제품을 들고 다니는 게 멋있어 보인다 말하는 기업들이었다. “저는 에이즈 예방을 지지합니다”라는 문구를 내걸지 않더라도, 그저 (3배 빠른) 빨간색 제품을 들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HIV 감염인들의 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역설이다.

무섭고도, 흥미로운 일이다. 우리는 공영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공공의 일을 하고 자신의 몫을 기꺼이 나누기 위해 자생적인 커뮤니티를 만든다. 그건 때로는 종교이기도 하고, 때로는 단체이기도 하고, 때로는 마을 커뮤니티, 때로는 사회적 기업 등과 같은 형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시도들은 성공하고 있는 걸까. 때로는 형편없이 실패하고 있진 않은가. 작금의 개신교회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정작 공공의 역할을 진짜 제대로 해내고 있는 건 이 끝내주게 멋진 빨간색 아이폰이진 않은가. 시장으로 넘어간 것은 권력 뿐만이 아닐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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