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최선은 없다

“선거란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뽑는 것이다.”

“최선을 뽑으면 되지 뭐하러 차악을 뽑나.”

선거 시즌마다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다. 보통 전자는 ‘될 후보에게 힘을 몰아줘야 한다’는 민주당계 지지자들로부터, 후자는 내 표는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후보에게 던지겠다는 진보정당 지지자들로부터 나온다.

이 이야기를 보며 나는 문득, 왜 민주당계 후보는 ‘차악’으로, 진보정당 후보는 ‘최선’으로 정의될까를 생각했다. 물론 따져보자면 단순한 이유다. 진보정당 지지자의 입장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까.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 구도를 객관적인 진실처럼 여기기도 한다. 진보는 ‘최선’이고 민주당계는 현실적인 ‘차악’에 불과하다는 것. 진보정당에서 채택했던 정책 아젠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 인상과 같은 것들을 추후 민주당계 정당에서 받아들인 것을 두고 진보정당이 민주당계 정당보다 객관적으로 더 나은 ‘최선의’ 대안이라 주장하는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진보정당 또한 결코 ‘최선’은 아니다. 진보적인 아젠다를 주도하기도 하지만 늘 옳은 목소리만을 내는 것도 결코 아니다. 정당 내부의 열악한 사정과 그로 인한 역량 부재는 늘 나오는 얘기고, 페미니즘이 대두되며 곪았던 성추문이 터져나오기도 한다. 탈핵은 에너지 전문가들로부터 실현 가능성 없는 탁상공론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생태주의나 소규모 마을공동체 등에 대한 일부의 찬사는 당황스런 데까지 있다.

노무현 정부의 최대 화두였던 FTA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FTA, 특히 한미 FTA가 경제를 파멸시킬 것이라고 얘기했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았다. 노무현 퇴임 후 심상정과 노무현이 벌였던 논쟁은 민주당계 정당과 진보정당의, 경제에 대한 인식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노무현vs심상정, 한미FTA 공방 쟁점, 머니투데이

노무현의 주장이 모두 옳다는 건 결코 아니다. 한미FTA는 물론이고 동북아 금융허브론, 개방 위주의 경제정책, 친삼성 정부라는 비판, 주가지수 등 외형적으로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내면적으로는 고용 문제 등에 있어 곪아갔다는 비판 등 논란거리가 많다. 하지만 이 당시 심상정의 주장은, 당시 신자유주의가 “누구도 정확히 정의하지 않으며, 누구나 쉽게 이야기하는” 종류의 담론이었다는 한계를 고려하더라도, 고루하다. 비관적인데, 근거는 빈약하다.

물론 시각에 따라 ‘파멸’의 기준을 달리 볼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한국 자동차 산업과 노동자, 그리고 내수시장이 붕괴할 것이라던, 심상정을 위시한 진보정당의 주장은 도리어 정 반대로 실현되었다. 현대 – 기아차가 슈퍼볼 광고 캠페인을 벌이는 시대가 왔다. 뭐 결과론적인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민주당계 정당이 워낙 ‘잡탕’이기도 하고, 지방 정치에 있어서는 새누리당, 현 자유한국당과 비교해도 딱히 나을 게 없는 토호 집단이기도 했고, 여러모로 비판받을 면이 많은 정당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결국 집권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를 생각하면, 자유한국당을 찍을 순 없는 이상 민주당이 어쩔 수 없이 ‘최선’의 선택으로 부상하고 마는 것이다.

어느 정치세력이나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목소리를 낸다. (민주당은 개중에서도 워낙 스펙트럼이 대중없이 넓긴 하지만.) 그들은 어떤 이슈에서는 한 목소리를 내지만, 어떤 이슈에서는 서로 의견을 달리한다. 어쩌면 협치라는 것은 정당 밖이 아니라 정당 안, 심지어 같은 계파나 같은 세력권 안에서도 작동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최선이란 게 수많은 분야의 수많은 이슈에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대로 움직이는 것이라면, 그런 최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합의점을 찾아가는 협의만이 존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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