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반기문을 위한 피사체가 아니다

반기문의 광폭행보

박근혜 –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무너진 여당 보수파를 위해, 백마… 가 아니라 비행기를 타고 초인이 도착했다. 반기문. 그는 전 유엔 사무총장이란 이름표를 앞세워 정권 재창출을 노리고 있다.

그는 입국 후 이른바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다. 현충원 참배부터 시작해 복지시설, 팽목항 등을 방문하고 대학 특강을 갖는 등 한 사람이 소화할 수 있는 일정인가 싶을 정도로 종횡무진이다. 문제는 그러다보니 여기저기서 삐걱대고 실수가 나온다는 것.

(주념글 도전) 반기문 입국후 나흘간 업적 29가지 총정리.txt, 디씨인사이드 주식 갤러리

귀국 전부터 인천공항에 의전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했고, 서울역에서는 승차권 발매기에 현금 2만 원을 억지로 넣다가 구설수에 올랐다. 현충원 방명록에는 자신의 치적을 자랑하는 글을 써 물의를 빚었고, 꽃동네에 방문해서는 턱받이를 본인이 착용하는 등의 기행을 보였다.

물론 반기문에게도 억울한 바는 있을 것이다. 턱받이는 본인이 자청한 것이 아니라 꽃동네 측에서 마련한 것이고, 퇴주잔 또한 음복할 차례가 되어 마셨을 뿐이란 해명이다. 물론 턱받이를 하거나 묘소 위에 조화를 올려놓으려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주인공: 반기문

하지만 문제는 그의 광폭행보가 우스꽝스럽고 어딘가 삐걱댄다는 것 뿐만이 아니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비디오머그의 아래 영상은 반기문의 광폭행보가 왜 진짜 문제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비디오머그] 화제의 ‘반기문 턱받이’, 무슨 일이 있었을까?, SBS

영상을 보면, 반기문은 할머니에게 “UN 사무총장을 하고 온 반기문”이라며 무의미한 인사를 건넸다가, “다리 좀 어떻게 주물러주시면 안 되냐”는 기자의 요구에 엉거주춤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병상에 누워있는 할머니의 식사를 도와주기 시작했는데, 죽을 몇 스푼 쯤 떠 주고는 (그나마 한 숟갈은 얼굴 주변에 떨어뜨렸다) 그만뒀다.

그가 할머니의 다리를 주물러준 것과 식사를 도와준 것이, 그 할머니에게 도움이 되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다리는 주무르는 둥 마는 둥 했고, 식사를 도와줬다는 것도 간에 기별도 안 갈 수준이었다. 평온한 휴식과 식사의 공간이 되어야 할 복지시설엔 대신 눈을 찌르는 듯한 카메라 플래시 세례와 시끄러운 셔터음이 들어찼다.

원래도 정치인들은 ‘민생 행보’라며 오히려 민생을 괴롭히는(…) 군부대 방문이니 시찰이니 하는 행보를 즐겨 했지만, 반기문의 그것은 차원이 다르다. 푸짐하게 욕 먹는 나경원의 장애아동 목욕 장면 촬영조차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적어도 그는 실제로 목욕 봉사를 하기라도 했다. 그런데 반기문은 뭔가. 봉사를 한 것도 아니고 좋은 그림만 만들고 휙 하고 자리를 떠버린다. (결과적으론 좋은 그림은 커녕 우스꽝스런 턱받이 사진이 탄생했지만.)

우리는 반기문이 아니라 반기문의 주위에 주목해야 한다. 노환으로 누워있던 할머니 말이다. 할머니는 온전히 반기문을 위한 피사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팽목항에서도 주인공은 반기문

시대의 비극 세월호 사태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어떤가? 취재하는 1인 미디어로 유명한 미디어몽구의 분노 어린 일갈을 들어보자.

반기문 팽목항 방문현장, 미디어몽구

한겨레에서도 반기문의 팽목항 방문이 왜 분노를 불러일으켰는지를 요약해서 소개하고 있다.

반기문 팽목항 방문 현장, 분노 유발 5장면, 한겨레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새누리당 의원은 세월호 유족들을 한 명씩 불러세워 반기문 앞에 줄세우고, 반기문은 그들과 악수를 하며 사진 찍기 좋은 그림을 만들어낸다. 자리 배치 또한 반기문을 중심으로 유족들을 배치했다.

반기문은 세월호 사태가 왜 아직까지도 수습되지 않은 것인지, 유족들의 낙담한 마음과 정부에 대한 분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듯 무의미한 이야기를 십 수분 가량 이어가다가 자리를 떴다. 여기에서도 새누리당 의원은 또다시 “같이 가자” “(반기문의) 손 좀 잡아봐” 따위의 말로 유가족들을 강요하여 사진 찍기 좋은 그림을 만들려 했고, 반기문은 정작 기자들의 질문은 회피하며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진정성 제로

진정성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는 것 안다. 진정성 없다는 비판이 남용되는 것도 안다. 하지만 반기문의 ‘민생행보’에는 정말 이 말밖에는 해 줄 게 없다. 진정성이 없다.

이는 귀국 후 광폭행보를 이어가는 반기문에 대한 비판과도 맞닿은 데가 있다. 반기문은 민생행보를 이어가면서도 민감한 사안에 대한 입장 표명을 피하고 있으며, 자신만의 정치철학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청년들에게 “노력”을 주문하고 “(나는) 땅바닥에서 공부했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유행 지난 꼰대형 정치인으로만 보인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행보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자 위안부 문제를 질문하는 기자들을 “나쁜 놈들”로 지칭하거나 자신에 대한 비판을 두고 “페이크 뉴스, 남을 헐뜯는 것에 기쁨을 느끼고, 대한민국 국민이 할 일이 아니다”라 발언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새누리당 들어가서 꽃길 걸으며 손 몇 번 잡아주고 대통령이 되는 그림을 상상했던 게 아니냐며 혀를 차기도 한다.

정말로 그렇다. 팽목항에 왜 갔는지, 꽃동네에 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 아니, 사실은 의도가 뻔히 추측이 된다. 사진 찍으러 간 거다. 물론 정치인들, 많이들 그런다. 민생 행보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려는 게 그렇게까지 나쁜 일도 아니다. 하지만 진정성이 없어도 이렇게 없으면 안 된다. 꽃동네에 갔으면 복지 문제에 대해 최소한 견해를 내비치고 노인 한 사람, 장애인 한 사람이라도 만나 그들의 삶을 체험해야 한다. 팽목항은 고작 십오 분 쓸데없는 얘기하고 일어나기에는 무게가 너무 무거운 곳이다.

꽃동네의 할머니는 반기문의 피사체가 되기 위해 있는 사람이 아니다. 오롯이 한 사람의 인격체이며 존엄한 존재다. 팽목항의 비극도 반기문의 피사체가 되기 위해 일어난 것이 아니다. 각자도생의 사회, 가장 약한 사람들이 사회의 위험을 떠안는 구조가 낳은 비극이며, 박근혜라는 암군이 내버려두고 묻어버리려 하는 현장이다. 반기문의 ‘광폭 행보’ 속에 피사체가 된 사람들은 그런 곳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반기문을 위한 피사체가 아니다. 자신의 실수가 우스꽝스러운 ‘짤방’이 되어 돌아다니는 데 대해 “국민들이 잘못하고 있다”고 분노의 일갈을 내지를 게 아니라, 자신을 위한 피사체로 전락한 저 수많은 존엄한 인간들과 비극의 현장을 향해 석고대죄부터 해야 한다. 자신의 잘못은 돌아보지도 않고 억울함부터 호소한다면 그건 곧 박근혜 2세에 다름아니다. 이건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다. 사람조차 되지 못한 이가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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