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애니밴드의 TPL(Talk, Play, Love). 제목부터 이미 제품의 홍보문구를 충실히 담고 있는 이 노래는 애니콜의 ‘애니(Any)’ 프로모션 사상 처음으로 이효리를 빼고 만든 노래다. 최근 실력이 급격히 좋아진 보아(BoA)의 보컬도 들을만 하고, 타블로의 래핑도 그럭저럭 괜찮다. 다만 이 노래를 들으며 여전히 의아한 것은 대체 왜 이 음악이 밴드음악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느냐는 것. 모 DJ가 진보라와 함께 보아와 타블로를 객원으로 초빙하여 만든 클럽 댄스 음악이라고 하면 딱 그럴듯 할 것 같은데. 근데 시아준수는 어디 있나요?
2. 애니밴드의 Promise You. 이 노래가 화제가 되어야 할 이유가 있다면, 희한하게 구리다는 것 뿐. 대자본의 집결체(?)인 ‘애니’ 프로모션 답지 않게 뻔한 노래가 나왔다. 체리필터가 부르면 딱 어울릴 것 같은 뻔한 팝. 어째 옛날의 ‘부담스런’ 목소리로 돌아온 보아와 sm 식의 괴로운 창법을 구사하는 시아준수. 치고 나가지 못하는 피아노, 어울리지 않는 곳에 억지로 끼어들어 있는 타블로의 래핑……
3. 특히 애니밴드 프로젝트가 눈에 거슬리는 건 타블로의 존재 때문이다. 보아와 시아준수야 더 말할 것 없는 ‘상품’일 뿐이니 괜찮고, 진보라 씨 역시 그다지 거슬리지 않는다. 하지만 타블로는 그냥 덮고 넘어갈 수가 없다. 그가 비(Rain)의 <I’m coming>에 피처링을 해 주는 등 팝과 랩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주도하던 것은 참 보기 좋은 일이었다. 쓸데없이 어깨에 힘이 들어간 힙합 씬의 못된 버릇을 고쳐주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의 광고 프로모션에 참가하는 건 얘기가 좀 다르다. 타블로가 누구던가, <Lesson> 시리즈를 통해 ‘자본주의의 모순’을 목놓아 부르짖던, 돈이면 뭐든지 다 되는 사회에 분노의 래핑을 늘어놓던 바로 그 인물 아닌가! 이건 끔찍한 배신이다. 그가 나보다 훨씬 영리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배신감은 더욱 증폭되어간다. 타블로가 목놓아 욕하던 그 ‘천민 자본주의’의 결정체가 바로 삼성임을 그가 모를 리 없기 때문에. Talk, Play, Love 따위의 싸구려 캠페인이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썩어버린 곳이기 때문에.
4. 결국 문제는 단순하다. 이효리, 에릭, 권상우, 이준기 등 그동안 ‘애니’ 프로모션에 함께했던 스타들은 하나같이 이미지와 트렌드를 판매하는 아이돌 상품일 뿐이었다. 보아와 시아준수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삼성이란 기업을 싫어하면서도 그 노래에는 즐거워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타블로는 단순히 이미지와 트렌드를 판매하는 아이돌이 아니었다. 그는 <Fly> 같은 뻔한 팝을 부르면서도 그 위에 시(詩)를 붙일 줄 아는, 가사(Lyric)를 창조하는 힙합퍼였다. 그리고 그는 그 진정성을 우리에게 팔았다. 이제는 그 가사가 그저 글 뿐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힙합퍼는 죽었다, 그리고 팝 스타만이 남았다.

  2 개의 반응

  1. 그러게요.
    어쩜 죽은 게 아니라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쓰읍

  2. 천민 자본주의 운운도 결국은 애초부터 상품이었던 게지요..

 댓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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