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동대문에 갔다. 사고 싶은 옷은 참 많았는데, 이 땅딸막한 체구에는 통 어울릴만한 옷이 없더라. 그냥 군침만 삼키다 돌아오는 수밖에. 한 상인은 나에게 “군대 아직 안 갔다왔죠? 군대 다녀오면 키 커요” 라고 감언이설을 속삭였는데, 사실 그런 말에 속아넘어갈 나이는 지나지 않았나. 스물 셋 청년의 키는 자라지 않는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스물 즈음에야 “5cm 쯤은 아직 자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겠지만, 이삼 년 쯤 지나도록 키에 아무 변화가 없고 보면 그런 희망을 버릴 수밖에 없다. 대신 현실과 타협을 시작한다. 작은 키를 커버할 수 있을 만한 옷은 시중에 얼마든지 나와 있다. – 아무래도 폼은 좀 덜 나겠지만.
그런데 희한하게도, 우리나라에는 스물 셋 청년의 키가 아직도 자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대통령 후보씩이나 되는 사람들이 말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동영, 손학규, 문국현, 심지어 그 똑똑하다는 이해찬조차 스물 셋 청년의 키가 자랄 수 있다고 믿는다. 무슨 얘기냐고? 경제성장률 얘기다.
문국현이 8%, 이명박이 7%, 이해찬과 정동영은 6%. 손학규는 뭔가 어색하게도 6.4%. 각 후보가 공약으로 제시한 경제성장률이다. 이 숫자를 보며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아주 단순하다. “숫자가 높아질수록 그 후보의 경제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것. 이해찬과 정동영은 그나마 양심적이고, 손학규는 프로파간다와 현실 사이에서 기괴한 타협점을 찾은 걸로 보이며, 이명박은 순수한 프로파간다에 나섰고, 문국현은 그냥 좀 멍청한 것 같다.
스물 셋 청년의 키는 자라지 않는다. 모두가 이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7%나 8%까지 높아질 수 없다. 그런 경제성장률은 한국 사회가 아직 어렸을 때, 한국의 자본주의가 아직 성숙하지 못했던 7~80년대 교도자본주의 시대에나 가능한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근 이십여년 동안 이 사실을 경험했다. 그런데 왜 이리도 그 엉뚱한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예순 세 살 한국 경제는 그렇게 자라지 않는다.
4 개의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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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셋 처녀는 키가 자라지 말입니다.ㅎㅎ
전, 스물 셋까지 컸는걸요.
희망을 버리지 않는한 분명 이루어질 거랍니다. 훗
윗분 댓글은 윗부분에 대한 답인지, 아랫부분에 대한 답인지 잘 모르겠네요;
어쩌면 문국현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비유라면 멋진 반어법이 되겠네요 -_-b
지난 대선때 이회창이 6% 지르니까 노무현은 1% 더 써서 7% 질렀는데요 뭘..
경제성장률인지 경매하는건지…
대학시절 어떤 교수님은 수업시간에 뜬금없이 학생 하나를 강단으로 불러내고선 이런 주문을 했다. “지금 자네가 낼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제자리 멀리뛰기를 한번 해보게나.” 그학생은 힘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