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7: “우리는 뒤쳐지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대부분의 휴대용 전자기기를 잡아먹어버린 지금, 그중에서도 시장을 선도하는 아이폰의 신제품 발표회는 IT 매니아들을 위한 최대의 축제가 되었음에 분명하다. 애플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상관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한국 시각으로 9월 8일 새벽, 애플이 신제품 발표회 “7에 봅시다(See you on the 7th)” 를 열고 아이폰 7과 애플 워치 시리즈 2를 발표했다. 2시간에 걸친 꽉 찬 키노트였지만, 애플의 임원진이 신제품의 신기능을 설명할 때마다 마치 애플이 “우리는 뒤쳐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어째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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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파이 이어폰 단자 삭제, 용기인가, 만용인가

아이폰 7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거의 모든 스마트폰이 채택하고 있는 3.5파이 이어폰 단자를 빼버렸다는 것이다. 애플은 대신 충전용 단자로 사용되는 라이트닝 단자를 이어폰 단자로 겸용하기로 결정했다.

애플은 3.5파이 이어폰 단자가 100년 넘게 사용된 구식 기술이라며 이를 빼는 것을 ‘용기(Courage)’라고 표현했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블루투스를 위시한 무선 이어폰 기술은 급속도로 대중화되고 있으며, 실제로 매출액 기준으로 유선 이어폰을 앞질렀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시장이 점차 무선으로 움직이고 있다. 애플도 발표회에서 무선 이어폰 에어팟(AirPods)을 내놓으며 이를 아이폰 7의 주요 기능 중 하나로 소개했다.

애플은 예전부터 구식 기술을 과감하게 버리는(!) 회사로도 유명했다. 1998년 출시된 아이맥(iMac)이 당시 필수품으로 여겨졌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빼 버린 일화는 유명하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8년에는 맥북 에어(MacBook Air)를 출시하면서 얇은 두께를 구현하기 위해 광학 디스크 드라이브를 빼 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훨씬 많은 부분에서 거짓이다. 만일 애플이 에어팟을 번들로 제공했다면 이것이 ‘용기’라는 애플의 발언에 동감해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애플은 여전히 유선이며, 호환성도 엉망이고, 음질 발전도 기대할 수 없는 라이트닝 이어폰을 번들로 제공한다. 그리고 에어팟은 22만원에 별도로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다음 세대로 과감하게 넘어갈 ‘용기’를 말하면서, 훨씬 퇴행적인 기술을 기본 제공한다? 이건 용기가 아니다. 감히 용기를 입에 담을 생각이었다면, 수익 타격을 감수하고 에어팟을 번들로 넣을 정도의 기개는 보여줬어야지. 여기에서 단 하나 눈에 띄는 용기가 있다면, 멀쩡한 이어폰을 놔두고 지갑의 출혈을 감수해야 할 애플 팬들의 용기 뿐이다.

 

“우리는 뒤쳐지고 있습니다”

방수 기능을 채용했지만, IP67 등급에 그쳐 삼성 갤럭시가 이미 IP68 등급을 받은 데 미치지 못한다. IP67에 비해 IP68은 더 엄격한 조건 하에서, 더 연속적인 침수로부터 스마트폰을 보호한다. 아이폰 사상 가장 배터리가 오래간다지만 역시 삼성 갤럭시 등 경쟁자에는 미치지 못한다.

애플 페이는 일본에서의 기능 향상 정도를 소개했을 뿐이라 한국 사용자에게는 와닿지 않는다. 디스플레이는 더 풍부한 색상과 나은 밝기를 자랑했지만, 이미 갤럭시 시리즈가 QHD 해상도의 더 나은 디스플레이를 제공해왔기에 감흥이 크지 않다.

카메라 성능 향상은 “드디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반갑다. 드디어 ƒ/1.8 조리개를 채택하였는데, 이는 갤럭시 S6와 S7의 중간 정도다. 센서 크기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아이폰 6나 6s보다는 큰 센서를 장착했다고 한다. 정확한 평가는 실제 사용자들 손에 들어가 사진이 촬영되어 봐야 알겠지만, 수치상으로는 갤럭시 S6와 동급, 혹 S7과 동급의 사진까지 기대해볼 만 하다.

그러나 카메라 성능 향상도 너무 늦었다. 아이폰 5 이후 답보가 너무 오래 계속되었기 때문에, 앞서나간다기보다 겨우 쫓아갔다는 인상이 더 강하다. “우리는 뒤쳐지고 있습니다”란 목소리가 자꾸만 환청처럼 아른거리는 게 이런 까닭이다. 경쟁사가 이미 도입한지 오래된 신기술이 너무 늦게 채용되거나, 혹 한 단계 뒤쳐진 채 도입되고 있다.

물론 애플이 첨단 기술을 무조건 앞장서 도입하는 회사였던 건 아니다. 하지만 애플의 그 혁신이란 걸 구경한지 너무 오래 되었다.

같은 날 발표된 애플 워치 시리즈 2는 어떤가. 애플 워치의 문제는 크게 네 가지였다. 느린 속도, 두꺼운 두께, 부족한 배터리 수명, 그리고 가격. 시리즈 2는 첫 번째를 제외하곤 아무 것도 개선되지 않았다. 디자인은 시리즈 1과 동일하며, 배터리 수명도 시리즈 1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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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1보다 더 강력한 방수를 제공하긴 하지만 그 뿐. GPS를 장착했지만 이미 LTE 이동통신까지 가능한 경쟁사의 제품군보다 낫다고 할 게 없다. 다른 스마트워치에선 당연시되는 ‘늘 켜져있는 디스플레이(Always On Display)’조차 빠졌다. 가격은 시리즈 1이 처음 등장했을 때보다 오히려 더 비싸기까지 하다(스포츠 모델의 경우).

 

This is 7

애플은 이번 제품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간결한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다. “이것이 바로 7(This is 7)”. 제품에 대한 자신감 없이는 내세울 수 없는 문구다. 그만큼 아이폰은 현재 ‘스마트폰’이라 불리는 제품군의 원형이나 다름없는 제품이며, 여전히 가장 빠르고 강력한 성능을 제공한다.

하지만 사용자들이 체감하는 새로운 기능, 방수, 홍채인식 등 새로운 보안 기능, 신용결제, 카메라 등 거의 모든 기능에 있어서 미적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연간 일억 대 이상의 ‘단일 모델’을 출고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 할지라도, 최고가의 가격대를 책정한 플래그십 스마트폰이 경쟁작에 비해 한발 뒤쳐진 기능밖에 제공하지 않는다면 그런 멋들어진 캐치프레이즈가 다 무슨 소용이랴. 이어폰 단자 삭제는 우리가 아직 혁신이란 걸 한다고 억지로 부르짖는 몸부림처럼 보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갤럭시 노트 7과 아이폰 7이 벌일 대결을 이렇게 평가했었다. 사상 최고의 갤럭시와 사상 최악의 아이폰의 싸움. 아이폰은 그 예언을 충실히 이행했다. 다만 갤럭시가 예상 밖의 연쇄폭발사태로 그러지 못했을 뿐. 애플의 이번 신제품 발표에서 가장 돋보인 순간은, 아이폰 7을 발표한 순간도 아니고, 애플 워치 시리즈 2를 발표한 순간도 아니며, 아마 발표회장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어느 곳에선가 갤럭시 노트 7이 또 폭발했다는 소문이 들렸던 바로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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