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금 문제 단상: 건물주 리쌍의 강제집행에 즈음하여

초기 비용

서울 도봉구 방학동 6969-69번지 팝핀세상 빌딩 1층에 위치한  횟집 폭풍수산. 사장 리스완 씨는 이 횟집을 열기 위해 꽤나 큰 돈을 썼다.

같은 자리에 있던 횟집 우라까다시 사장은 긴 시간 이 자리를 횟집 자리로 다져놓은 댓가와 이런저런 간단한 노하우, 그리고 입지에 대한 댓가로 1억 원을 요구했다. 소위 말하는 권리금이다. 리스완 씨는 이어 이 단순한 횟집을 자신의 남성적인 외모에 어울리는 세련된 모더니즘 스타일로 꾸미기 위해 인테리어 비용 5천 만 원을 지출했다.

보증금과 매달 나가는 임대료도 자영업자에겐 꽤나 부담스런 금액이지만, 이 권리금과 인테리어 비용만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 장사가 어떻게 될지, 불확실한 미래 속에 목돈을 한꺼번에 묻어둬야 하는 것이다.

 

1억 5천만 원을 회수하라

드디어 대망의 영업을 시작한 리스완 씨의 첫 목표는, 바로 이 돈을 회수하는 것이다. 뭐 다른 방법이 있나. 열심히 버는 수밖에. 이 돈을 회수하는 데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3년? 4년? 자영업자들의 평균 소득을 생각해보면, 어쨌든 그렇게 빠르진 못할 것이다. 어쩌면 초반 몇 달, 길게는 일 년 쯤은 적자에 허덕이느라 오히려 가게에 쏟아붓는 돈만 더 늘어날지도 모른다.

권리금은 물론 가게를 꾸미는 데 쓴 인테리어 비용도 그렇게 단기간엔 회수할 수가 없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보통 가게 계약은 2년 단위로 이뤄진다는 것. 실력은 물론 운까지 따르지 않는 이상, 2년 만에 저 큰 돈을 회수하고 수익까지 낸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미스터 초밥왕이 현신한다면 모를까.

 

묵시적 합의

일반적으로 임대 계약은 2년 단위로 이뤄진다. 건물주 입장에선 장기 계약을 할 이유가 없다. 임대를 갱신하며 임대료를 올릴 수 있는데 뭐하러 갑 입장에서 장기 계약을 맺겠는가. 대신 건물주와 리스완 씨 사이에는 보통, 리스완 씨가 엔간히 깽판을 치지 않는 한 임대를 갱신해 줄 것이라는 일종의 ‘묵시적’ 합의가 있기 마련인데…

‘묵시적 합의’란 묵시적이기에 당연히 언제 깨져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가게가 좀 잘 된다 싶으면 건물주가 가게 주인을 내쫓고 본인이 직접 같은 업종의 식당을 차린다는 얘기는 이제 워낙 흔해빠져서 신기할 것도 없을 지경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 법률은 적어도 5년 동안은 세입자가 계약을 갱신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긴 하지만…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리쌍의 경우는 더 황망한 경우다. 곱창집 주인 서윤수 씨가 곱창집을 열며 ‘묵시적 합의’를 했던 건물주가 리쌍에게 건물을 팔아버린 것이다. 계약서가 남아있는 것도 아니고, 그 ‘묵시적 합의’란 걸 한 건물주는 사라지고 없다. 리쌍은 그 ‘묵시적 합의’로부터 자유롭다. 그놈의 ‘묵시적 합의’란 물건은 하늘로 날아가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몇 년 전의 일이다.

[법도 외면한 돈, 상가 권리금 해부] 건물주 리쌍 vs 임차인 리쌍…건물주 선처에 기댈 수밖에 없어, 국민일보

 

 

내것인 듯 내것 아닌 내것 같은 권리금

억 단위의 권리금을 2년 안에 뽑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목 좋은 자리를 원하는 수많은 자영업자 지망생들의 경쟁이 부풀리고 부풀려놓은 이 권리금이란 돈은, 사실 2년이 아니라 법이 보장하는 5년, 아니, 그 이상 오래 장사를 해서도 건지기가 쉽지 않다.

사실 권리금을 건질 방법이 또 하나 있긴 하다. 폭풍수산을 열 때 전 사장에게 권리금을 줬던 것처럼, 폭풍수산을 닫으며 다음에 들어올 가게 주인에게 권리금을 받는 것이다. 장사만으로는 도저히 건질 수 없을 정도로 비대해진 권리금을 건지기 위해, 자영업자들 사이에 일종의 폭탄 돌리기가 일어나는 것이다.

 

법률, 권리금을 끌어안다

인테리어 비용이야 장사를 하자면 당연히 들어가는 투자라 치지만, 권리금이란 그야말로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이다. 두리반, 마리, 그리고 이제 리쌍 사태에 이르기까지, 이 폭탄은 어느 순간에는 터질 수밖에 없었고 그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의 길고 긴 투쟁 끝에 법률이 권리금이란 폭탄을 인정하게 된 것이 1년 전의 일. 상가건물 임대차 보호법에서 권리금의 개념을 명문화한 것이다. (제 10조의 3). 게다가 임차인끼리 권리금을 주고받는 행위를 건물주가 방해할 수 없도록 정해놓기까지 했다(같은 법, 제10조의 4).

상가 임대차 보호법은 5년간 계약을 갱신할 수 있는 권리를 세입자에게 보장한다. 과거에는 리쌍의 경우처럼 중간에 건물주가 바뀌면 이 권리가 무효화된다는 심각한 약점이 있었고, 최초의 분쟁도 이 때문에 일어났는데, 다행히 작년(2015) 법이 개정되며 건물주가 도중에 바뀌더라도 이 권리가 상실되지 않도록 안전장치까지 마련되었다.

 

리쌍 사태 바라보기

이번 사건은 사실 잘잘못을 따지기는 애매하다. 양자는 나름의 합의책을 만들었고 이 합의책은 나름 잘 굴러갔다. 보는 눈에 따라 리쌍을 여전히 야박하다 볼 수도 있고, 세입자가 억지를 쓴다고 볼 수도 있다.

리쌍은 상가 임대차 보호법의 허점을 이용해 곱창집을 2년 만에 퇴거시키려 했다. 위법도 아니었고, 당시에는 당연시되는 관례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법이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던 헛점을 악용한 셈이니 정당한 행위라고 할 순 없을 것 같다. 리쌍 본인들도 곱창집을 운영하며 같은 식으로 피해를 보기도 했다(!).

이에 리쌍은 곱창집 측이 요구한 보상금의 일부를 지급하고 지하 및 주차장 부분을 임대하여 장사를 계속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 과정에서 주차장 부분에 천막을 설치하는 등 구조를 변경하며 분쟁이 일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리쌍 측이 계약 중단을 통보하고 2번의 퇴거명령 끝에 강제집행에 나서며 사달이 일어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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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여기에서 서씨가 받은 보상금과 지하에서의 영업권리가 잃어버린 권리금과 인테리어, 1층에서의 영업 권리를 보상할 만큼 충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나마 리쌍 측과 최대한 조율을 이룬 결과일 순 있어도 말이다. 애당초 이 상황이 서씨가 2년 만에 법의 헛점으로 인해 1층에서 내쫓기면서 벌어진 것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사실 법이 정한 5년의 기한이 자영업자들의 초기 투자 비용을 생각해 볼 때 충분한지는 여전히 갑론을박의 여지가 있으며, 권리금 보호 장치가 마련되었다한들 이것이 결국 누군가에겐 폭탄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유념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 어어어, 하는 새 계약기한이 끝나가고, 건물주는 한달 전 계약 갱신을 거부하고, 그동안 다음에 들어올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면서 (권리금 폭탄을 떠넘길 사람을 구하지 못하면서) 꼼짝없이 권리금을 날릴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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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계속 언급한 바와 같이, 5년 안에는 세입자가 계약 갱신을 요구할 수 있으며(계약 종료 6개월에서 1개월 사이) 건물주는 이를 거부할 수 없다. 보증금 규모와 관계없이 말이다. 그런데 리쌍 측이 2년 여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세입자를 강제 퇴거시킬 수 있었던 것은, 세입자, 즉 곱창집 측이 계약 갱신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은 잠자는 세입자의 권리를 보호해 줄 순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 사태를 보는 눈은 둘로 나뉜다. 상가 임대차보호법은 헛점이 많다. 심지어 건물주 리쌍과 곱창집 서씨 간의 분쟁이 처음 일어났을 즈음은 문제가 훨씬 심각했다. 리쌍은 그 헛점을 이용해 서씨를 퇴거시키려 했고, 분쟁 끝에 합의했다. 여기에서 서씨가 받은 보상은 건물주 리쌍 입장에서는 큰 양보였지만, 사실 그 전에 서씨가 잃어버린 것에 비할 수 있는 건 못 된다. 이건 곱창집을 편들게 되는 까닭이다.

그러나 이번 강제퇴거 시점에서 서씨는 지하에서 다시금 5년간 영업할 권리를 보장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지하여 이를 사실상 걷어차(…) 버렸다. 양자 모두 계약 갱신을 요구하지 않을 경우, 주택이나 일정 규모 이하의 상점은 임대차 보호법에 따라 1년 단위로 계약이 다시 이뤄진 것으로 보지만, 서씨의 곱창집처럼 규모가 클 경우에는 민법에 따라 계약은 계속 이어지지만 그 기한은 정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 따라서 리쌍은 계약 중단을 통보한 뒤 적법하게 서씨를 퇴거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묵시적 갱신 조항에 대한 이해(규모에 따라 서로 다른 법이 적용된다는 것)가 전문가가 아닌 이상 부족할 수 있음을 참작할 수는 있을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한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

서씨의 곱창집은 규모가 크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그렇다면 그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서울시의 경우, ‘환산보증금’이 4억 원 이하일 때만 이 규정이 적용된다.

4억 원이란 기준이 굉장히 커 보이지만, 사실 막상 그렇지가 않다는 게 문제. 환산보증금을 계산하는 공식은 보증금 + (월세 * 100) 이므로, 예를 들어 – 보증금 1억에 월세 300이면 기준을 꽉 채워버린다. 서울의 목 좋은 동네 1층 매장이라면 환산보증금 4억 원 따위는 우습다. 실제로 서울에선 상가의 1/4 정도만이 이 기준에 부합한다고 알려져 있다. 환산보증금 기준이 더 높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현실화되지는 못하고 있다.

만일 건물주가 세입자를 내쫓을 목적으로, 보증금과 임대료를 급격히 올려버린다면 어떨까? 다행히 법률은 임대료 및 보증금을 9% 이상 올릴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안전장치 또한 환산보증금 4억 원이라는 기준에 부합할 때만 작동한다. 목 좋은 음식점이라면 대부분 이 기준을 넘어버리고, 보호를 받을 수가 없다. “건물주가 갑자기 월세를 몇 배 올려달라 하여 쫓겨났다”는 식의 토로가 심심찮게 보이는 까닭이 이렇다.

 

“법대로”를 넘어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장사를 하기 위해 투입해야 하는 초기 비용이 너무 크다. 폭풍수산은 5천 만 원을 썼지만, 규모가 더 크다면 더 큰 돈이 들어갈 것이다. 곱창집의 서 씨는 2억 7천 만 원을 권리금으로 썼다고 알려져 있다. 권리금은 법이 드디어 보호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누군가에겐 폭탄으로 돌아갈 것이다. 상가 임대차 보호법이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취약점은 남아있다.

샐러리맨이 그렇듯 자영업자도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기술을 닦는 것은 물론 인테리어를 바꾸고 광고지를 뿌리며 투자를 하고 영업을 한다. 그러나 그 기반은 불안정하기 짝이 없다. 계약 기간이 끝나고 건물주가 나가라고 통보하면 그렇게 투자한 것들을 뒤에 두고 나갈 수밖에 없다.

이력서에 쓸 경력이라도 남으면 좋으련만 그런 것도 아니다. 셰프 같은 이름을 단 대가조차도 장사가 잘 된다 싶으면 건물주에게 쫓겨나가기가 부지기수라 했다. 그래도 그들은 자신의 이름 석 자가 가치 있는 브랜드이기라도 하지만,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에겐 그런 거 없다. 손님들은 사장을 보고 가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그 밥집에 찾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안정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억 단위의 돈이 허공으로 날아갈지도 모르는 불안정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법률이 보장하는 바는 사실 최소한의 것이다. 이번 사태에서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를 따지기 전에 – 우리는 여전히 상가 임대차 보호법을 수많은 영세 사업자들을 위해 더 갈고 닦을 필요가 있다.

한때는 건물주가 바뀌면 ‘계약을 갱신할 권리’ 조차 빼았겼던 때가 있었다. 또 한때는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을 이유로 세입자들을 쉽게 쫓아낼 수 있었던 때도 있었다. 한때라고 하긴 민망하다. 고작 2년 전까지 그랬으니까. 이 모든 불합리함이 “법대로” 였던 시절이었다.

법은 촘촘해졌고, 건물주가 바뀌어도 세입자가 ‘계약을 갱신할 권리’는 여전히 남아있게 되었으며,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의 요건은 더 까다로워졌다. 법이 회사가 노동자를 마구잡이로 해고할 수 없도록 보호하듯이, 건물주가 세입자를 마구잡이로 쫓아낼 수 없도록 보호하는 장치가 마련되었다.

여전히 변화가 필요하다. 누군가는 그럼 법에 대고 따지면 되지 않느냐 하지만, 샐러리맨에게 회사 대신 법에 대고 따지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공허한 요구다. 투쟁은 일상에서 일어나며, 그렇게 “송곳처럼 뚫고 나간” 시끄러운 소리들이 종국에는 법을 바꾸기 마련이다. 아마 다음 과제는 환산보증금 현실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권리금 문제 단상: 건물주 리쌍의 강제집행에 즈음하여”에 대한 3개의 댓글

  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다음 칸으로 넘기는 enter가 안 먹히는군요) 세입자 측의 막무가내 ‘을질’ 로 판단하고 있었는데, 다른 생각을 해 볼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주차장에 세운 불법 가건물 때문에 건물주와 구청 측과 끊임없이 마찰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다면, 건물주가 지긋지긋한 세입자가 나가주기를 간절히 바랐을 거라는 건 예상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사전 대처가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케이스로 인해 정말로 억울한 입장에 처한 다른 세입자가 동정 여론이나 구제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합니다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목소리와, 이런 행동으 인해, 어찌되었든지 법의 추가적인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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