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이 결국 교육부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체적으로 “차세대 경제교과서 모형”을 배포했다. 기존의 경제교과서가 반시장적이고 반기업적인 정서로 가득차 있어 경제교과서로 부적합하다는 재계의 의견에 따라 교육부와 전경련이 공동으로 개발했다가, 그 당위성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며 교육부가 손을 뗐던 물건이다. 이에 삼성 지킴이로 악명높은 중앙일보가 즉각 “교육부는 경제교육에서 손을 떼고 전경련의 노력을 방해하지 말라”는 내용의 사설을 내걸었는데, 감히 말하건데 이 사설은 스물 세 살짜리 어린애가 헛소리나 지껄여놓는 이 블로그의 잡설들보다도 논리적 구조가 취약한 졸문인 것 같다. 중앙일보의 말인즉, 교육을 담당하는 정부기관보다 일개 이익집단이 교육에 더 적합하단 뜻인가?

전경련, 전국경제인연합회란 ‘경제인의 모임’이라는 사전적인 의미와 달리 경제인 전반의 모임이 아니다. 이는 다해봐야 고작
400여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대기업 회장들의 모임으로, 삼성같이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유수의 대기업 회장들이 이 단체의
회원이다. 즉 전경련이 교과서 모형을 개발한다는 사실을 한꺼풀 벗겨내고 보면, 대기업 경영자들이 모여서 교과서를 만든다는
어이없는 얘기가 되는 셈이다. 노사협상에서 ‘사’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교과서, 공급-수요의 그래프에서 ‘공급’ 역할에
선 사람들이 만드는 교과서다. 한쪽에 편향될 수밖에 없다. 거기에 교과서 스스로가 기업을 두고 ‘자기의 가격(value)을 극대화시키고자
하는 생물’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조직’ 이라 지칭하지 않았던가? 이는 곧 기업이 만든 이 문제의 교과서가 기업의
이윤 극대화를 위해 만들어졌으리라는 논리적 귀결을 낳는다. (이 블로그, ‘미친 교육부가 교과서를 만드는 법’ 중 발췌)

전경련의 이 교과서가 반노동적인 관점을 무차별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프레시안의 지적도 일견 옳은 점이 있으나, 사실 이는 차라리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실제로 존경받는 경제학자인 정운찬 선생이나 이준구 선생이 저술한 기초 경제학 교과서 역시 상당히 우편향적이고 반노동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누구도 이 학자들의 교과서가 “우편향적이고 반노동적”이라고 발끈하지는 않는다. 이는 경제적 효율성을 가장 우선순위에 놓고 보는 경제학이 태생적으로 어느정도 우편향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우편향적이냐, 좌편향적이냐 하는 문제는 그저 좌우의 시각 차이일 뿐일런지도 모른다.

이 교과서의 진짜 문제는 이미 밝혔듯이 이 교과서가 이익단체, 그것도 대기업들의 장(長)이 모인 가장 극단적인 이익단체의 손에 의해 저술되었다는 점에 있다. 말이 좋아 4대 ‘경제’단체 중 하나지,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야 대한의사협회와 대한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는 3대 보건의료단체 아닌가. 경제단체니 보건의료단체니 하니 어째 중립적일 것 같지만, 대한의사협회가 이익단체가 아니라고 믿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물론 정론지를 자칭하는 언론들도 대한의사협회를 말하며 거침없이 그들을 이익단체라 못박고 있다. 전경련도 마찬가지다. 특히 전경련은 이 블로그에서 반쪽자리 시장 경제란 졸문으로 피력한 바, 대기업 위주로 편향된 반쪽짜리 시장 경제를 유지하려는 구체제(Ancient Regime)일 따름이라 본다.

교과서란 학계가 만드는 것이다. 이게 상식이다. 경제학 교과서는 존경할만한 경제학계의 노장파 학자들이 저술하는 법이고, 의학이나 한의학 교과서는 전국의 의대, 한의대 교수가 한 자리에 모여 치열한 토의와 토론을 거쳐 공저하는 게 상식이다. 혹여 약리학 교과서를 제약회사 노바티스가 저술한다든가, 의학 교과서를 의료기기 회사가 저술한다든가 한다면 그 교과서를 대체 누가 믿을 수 있을까? 고교 과학 교과서 중 남성 생식기 질환에 대한 부분을 저술한답시고 비아그라를 만든 화이자 사(社)가 나섰다고 가정해보자. 이걸 교육부가 허가해주지 않았다 할 때, 이때 비난받아야 할 것은 교육부인가, 아니면 화이자 사인가?

일개 이익단체가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설레발쳤을 때 이미 고교 교육은 치명상을 입었을런지 모른다. 오늘, 교과서를 참칭한 이 정체불명의 물건을 교육부의 동의도 없이 전경련이 일방적으로 배포함으로써 고교 교육은 진짜 죽음을 맞이했다. 돈이라는 이름의 강력한 칼에 찔려서 말이다. 그리고 정론지를 참칭하는 중앙일보가 사설을 통해 교육을 담당하는 국가 기관에게 교육에서 손을 떼라 주문하고, 일개 이익단체가 교육을 담당하는 것을 ‘방해’해선 안 된다고 열변을 토했을 때, 비로소 우리의 고교 교육은 부활할 희망마저 잃고 말았다. 돈이란 날개를 단 언론이란 총이 교육을 향해 최후의 일격을 날린 것이다. 이 어찌 비극이 아닐 수 있을까?

  2 개의 반응

  1. 기존의 경제교과서가 반시장적이고 반기업적인 정서로 가득차 있어 경제교과서로 부적합하다는 재계의 의견에 따라 교육부와 전경련이 공동으로 개발 => 요 부분도 어이 없는 판국에 이건 한술 더 뜨는군요.

  2. 고등학교때의 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조선일보 사설로 논술공부를 했던 저는 신입생 때 운동권 선배들을 오지게도 싫어했었고 노동자들은 다 빨갱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심히 걱정입니다;;;

 댓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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