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란 무엇인가에 대한 클린턴과 샌더스의 대화

진보에 대한 클린턴과 샌더스의 대화

클린턴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실행하는 진보주의자입니다. 진보주의란, 말 그대로, 전진한다는 의미입니다.

샌더스 상원의원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말씀대로라면 민주당의 누가 진보 진영에 남을 수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진보가 아닙니다. 월 스트리트로부터 기부를 받았으니까요. 바이든 부통령도 진보가 아닙니다. 키스톤 송유관 건설을 지지했으니까요. 진 샤힌 상원의원도 진보가 아닙니다. 무역협정을 지지하고 있거든요. 심지어 고인이 되신 폴 웰스톤 상원의원도 그 정의에는 들어맞지 않습니다. DOMA(결혼보호법, 동성결혼을 금지하는 법)를 찬성했으니까요.

아시다시피, 우리들 사이엔 차이점이 있습니다. 전 우리가 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에 대해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굳이 딱지를 붙여야 한다면, 전 총기규제법에 다섯 번이나 반대한 것이 진보적인 행동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총기 판매자와 구매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 진보라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테드 케네디의 이민 완화 정책에 반대한 것이 진보라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주: 이는 모두 버니 샌더스의 반 진보적인 행보를 지적한 것이다.) 우린 이렇게 전진과 후퇴를 반복합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해 왔으며 또한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샌더스는 이렇게 말한다.

미국 경제가 처한 현실을 살펴봅시다. 현실은 이렇습니다. 세계 주요국 중 가장 투표율이 낮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인 의사 결정에서 배제되고 있거든요. 현실은 이렇습니다. 지난 삼십 년 간 조 단위에 달하는 부가 중산층으로부터 상위 0.1%로 집중되고 있습니다. 현실은 이렇습니다. 미국인들의 요구와 열망과 동떨어진 부패한 경제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정치적인 의사 결정에서 배제되어 온 수백만의 사람들이 일어나 싸우는 정치 혁명이야말로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몇 안 되는 기부자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를 대변하도록 요구해야 합니다. (주: 샌더스 캠프는 클린턴 캠프가 대자본으로부터 기부를 받는다는 것을 공격거리로 삼아왔다.)

지금 제가 얘기하는 것들은, 급진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공립 대학 등록금을 무료로 하는 것은 전세계 다양한 국가에서 이미 존재하며, 또한 미국에서도 존재했던 제도입니다. 무너진 기반 시설을 재건하고, 케이맨 제도와 같은 조세 천국(조세회피처)에 돈을 묻어두는 등 대기업들의 조세 회피 행위를 막음으로써 천 삼백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급진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자본의 이해와 기부자들과 맞서 싸우는 것입니다.

그리 할 때 비로소 미국을 바꿀 수 있습니다.

 

진보란 하나로 정의될 수 있는 개념인가

샌더스는 무소속 하원의원으로, 그리고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며 오랫동안 미국의 진보주의를 대표해왔다. 그러나 클린턴의 말처럼 그조차 이민 문제에 대해서 테드 케네디의 이민 대책에 반대하는 등 진보와 동떨어진 입장을 취한 적이 있다. 오락가락하는 그의 이민 정책은 그의 주요 약점 중 하나다. 총기 규제에 대한 샌더스의 입장이야 다시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스스로를 ‘좌파 신자유주의자’라 지칭하며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사실 이는 한쪽에서는 좌파, 한쪽에서는 신자유주의자로 비난받는 데 대한 자조적인 농담이었지만서도, 사실 그게 그리 비웃음거리가 될 개념이었는지는, 지금 생각해보면 애매하다.

세계 최대 시총을 자랑하는 애플의 최고경영자는 동성애자다. 자연스럽게도 성 소수자들의 인권이나 동성결혼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그는 샌더스가 “그들에게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하는 대자본에 속하며, 역시 샌더스의 말에 따르면, 조세를 회피하여 천 삼백 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게 방해하는 적이다.

그렇다면 팀 쿡은 진보인가, 보수인가?

좌파, 우파, 진보, 보수… 간단 개념정리, ㅍㅍㅅㅅ

그래서 경제적 좌우와 개인적 좌우를 따로 보는 방법도 있다. 이 경우, 팀 쿡은 경제적으론 보수지만 개인의 자유를 논함에 있어서는 진보라는 식으로 도식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도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데 충분한 것은 아니다.

비교적 간명해보이는 이슈인 최저임금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하면 진보, 그렇지 않으면 보수란 식으로 간단하게 이분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만도 않다.

최저임금제도가 고용에 미치는 영향, On the other hand

위와 같은 견해에 따라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반대한다면 그 사람은 진보인가, 보수인가? 혹 다른 견해, 고용률 자체가 줄어들 뿐 아니라 저숙련 노동자의 채용이 특히 줄어든다는 이론을 더 설득력있다 생각하여 최저임금의 인상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진보인가, 아니면 보수인가?

무역 협정은 반드시 보수인가? 한-칠레 FTA와 한-미 FTA는 어떻게 구분해 보아야 하는가? 세계 무역을 ‘사다리 걷어차기’ 식 시선으로 보는 것은 진보인가, 보수인가? 여기에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는 확고히 정의될 수 있는 개념인가? 똑같은 질문을 좌우를 나누는 도식을 향해서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 진보와 보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메갈리아는 여성 인권의 향상을 주장하지만 남성 혐오라는 방식을 통해(그들은 이를 ‘미러링’이라 주장한다) 실천하고 있는데, 이것은 진보인가? 그 분파는 여성 인권을 우선하기 위해 남성 동성애자 역시 혐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것은 진보인가?

 

도그마를 넘어

어떤 사람들은 온건하다는 것과 진보적이란 것이 같이 갈 수 없는 개념이라고 얘기하지만, 이건 온건하다는 것과 보수적이란 것이 같이 갈 수 없는 개념이란 말과 무엇이 얼마나 다른가 싶다.

나는 클린턴을 단순한 보수주의자로 보는 것도, 샌더스를 단순한 급진주의자로 보는 것도 탐탁찮다. 보수와 진보는 훨씬 복잡한 개념이며, 사실 사회학을 심도있게 전공할 생각이 아닌 이상, 꼭 따져 물어야 할 개념인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건 “무엇을 해 왔으며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대자본의 전횡을 막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그들에게 폭탄을 떨구는 것이다. 말 그대로, 폭탄 말이다. 빵 터지는 그 폭탄. 하지만 누구도 자본가의 머리 위에 폭탄을 떨구는 것을 정책이라 말하지는 않는다. 보통은 목표를 설정하고 실행 결과를 예측하며, 이해 당사자들을 포함한 사람들의 의견을 취합하여 이윽고 한 단계를 밟아나간다. 합리성은 보혁을 막론하고 요구된다.

누구나 때로는 급진적일 수도 있고, 또 누구나 때로는 보수적일 수도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 슬로건, 급진적이거나 혹 보수적인 슬로건이 어떤 과정을 통해 나왔는가 하는 것이다. 어떤 가치를 목표로 하며, 어떤 합리적인 사고를 거쳐 만들어졌으며, 나아가 어떤 구체적인 계획을 품에 안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진보란 무엇인가에 대한 클린턴과 샌더스의 대화”에 대한 한개의 댓글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