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씨는 자신의 글 “황빠가 된 노빠들을 우려하는 이유“에서 “프로와 아마추어 사이에 드리워진 드높은 벽”을 운운하며 아마추어가 프로의 영역에 함부로 발을 들여서는 안 된다고 점잖게 충고(?)한다. 그러나 나는 진중권씨의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아마추어만 못한 프로들을 워낙 자주 보았기 때문인데, 진중권씨는 그 중 한 사람이다. (고로 나 역시 하수 아마추어임에도 불구하고 프로인 그들에게 감히 비판의 칼을 겨눈다.)

그는 돼지를 보고 “너는 돼지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 매우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 능력 또한 소중한 능력이다. 황우석 사태에서 그의 글이나 말이 돋보이는 이유 역시 그의 언어를 잠시 빌려 쓰자면 ‘황빠’들이 바로 돼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밑천이 풍요롭지 못하다. 돼지가 아니라 인간과 말싸움을 하게 되면 대체로 진다. 그가 노혜경씨에게 던진 일갈도 그런 맥락에서, 진중권씨의 부족한 밑천을 드러냈다고 할 만하다.

그렇다고 노혜경씨가 진중권씨의 말싸움에서 이겼냐 하면 그건 아닌 것 같다. 노혜경씨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노혜경씨가 밑천을 맡겨두고 있는 “서프라이즈” 란 사이트가 거대한 구멍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가짜다. 개혁을 빌미로 장사를 하는 곳이다. 서프라이즈가 해 오던 노무현을 중심으로 한 개혁 장사가 통했던 건 그 반대에 서 있는 한나라당의 존재 때문으로, 한나라당, 박근혜, 이명박과 같은 “절대악”의 존재가 겨우 그 존재를 지탱시켰던 셈이다. (이는 열린우리당의 개혁 장사와도 비슷하다.)

따라서 서프라이즈가 황우석 사태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이미 서프라이즈의 밑천은 다 떨어진 셈이다. 왜냐하면 황우석 사태에서 서프라이즈와 반대 논조를 채택한 이들(주로 브릭이나 디씨인사이드)은 한나라당과 달리 절대악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프라이즈는 논리의 정교성이나 명분 등에서 브릭 및 디씨인사이드에게 완전히 밀렸다. 누리꾼들이 다들 PD수첩을 욕하는 것을 보고 PD수첩도 절대악이겠거니 하며 “애국 장사”를 해볼까 하고 달려들었다가 오링이 난 듯하다. 블러핑에 이중으로 속은 셈인데……

노혜경씨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서프라이즈를 옹호하려다보니 억지로 엉터리 논리를 들이밀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서프라이즈의 밑천은 이미 바닥나 버린 후다.

김정란 교수는 우리 학교의 교수이기도 한데, 스스로 노빠를 자처한 이후에도 싫어할 수가 없었다. 학연 때문이 아니라, 언젠가 술자리에서 그 분이 말했던 “대중이라는 희망”을 나 또한 믿고 싶었기 때문이고, 그런 말을 한 김정란 교수 또한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프라이즈의 밑천이 드러나고 그 장사꾼적인 기질이 결국 스스로를 오링으로 몰아넣은 지금까지 그 이름이 대문에 걸려 있다는 것은 그 지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든다.

과학적 존재로서의 황우석은 이미 죽었고, 이제 사회과학적 존재로서의 황우석이 남았다. 서프라이즈는 사회과학적 황우석을 살려내기 위해 온갖 권모술수를 동원하는 더러운 장이며, 진중권씨가 말했듯 그곳이 똥물이라면 김정란 교수는 과감히 침을 뱉어야 했다. 무엇보다 그 장(長)인 서영석이 광기에 사로잡힌 지금에라면 그래야 했다. 김정란 교수가 아무리 서프라이즈에 관심이 없다 해도 김정란이란 석 자 이름이 가진 무게감을 생각해야 한다.

말도 안 되는 기사를 쏟아낸 기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 특히 “젓가락을 이용한 핵이식 기술” 운운한 연합뉴스나, “일반인은 돈을 암만 줘도 열람할 수 없는 싸이언스지”란 헛소리를 한 KBS 홍사훈 과학기자의 말, 국민의 알 권리 운운하며 황우석의 언론 플레이에 이용당한 SBS 등 –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마저 황우석의 낚시에 걸려들어 꿈을 헤매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블랙코메디라 할 만하다. 황우석은 얼마나 더 많은 자칭 지식인들을 망칠 것인가, 혹 낚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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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떨림

  3 개의 반응

  1. 안녕하세요 미디어몹입니다. 님의 상기 포스트가 미디어몹에 링크가 되었습니다. 링크가 불편하시면 아래 리플로 의사를 표시해주세요. 해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즐거운 포스팅되시기를 바랍니다.

  2. 줄기세포 파동을 바라보는 시각이 서로 크게 다룰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하나,

    “서프라이즈는 사회과학적 황우석을 살려내기 위해 온갖 권모술수를 동원하는 더러운 장” 이라는 말씀은 씁쓸하군요.

    쟁점은 두가지 인데요,

    첫째, 황우석을 살려내는 것이 더러운 짓인가 하는 것과
    둘째, 서프라이즈가 어떤 권모술수를 썼냐는 것이죠.

    황박사는 지난 기성 언론에 의해 인격을 모독 당해왔습니다. 한 개인을 모든 언론들이 집중적으로 죽인 경우는 유래에도 없었죠. 그가 설사 논문을 조작했다 한들 이런 인권말살에는 그 어떤 타당성도 없어 보입니다.
    그런 황박사를 지켜주고 안타까워해 주는 노력들이 더러운 짓일까요?
    더욱이 님께서는 인정 안하실 지 모르지만, 영국의 뉴캐슬대와 황우석 연구팀만이 가지고 있는 배판포 기술을 보존하고 싶은 순진한 애국심(?)이 더러운 짓으로 매도당하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는 꾸준하게 줄기세포 파동에 관한 서프라이즈의 글을 읽고 있습니다만, 서프라이즈가 어떤 권모술수를 썼는지는 모르겠군요.
    서프라이즈는 글을 읽는 이들이 점수를 주는 방식으로 평가를 받습니다.
    자연스레 대다수 독자들에 의해 여론이 형성되는 것이지요. 편집진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요…
    서프라이즈가 줄기세포 파동의 핵심적인 문제를 꾸준하게 제기하고 ‘서프라이즈 보고서’를 제출한 것을 권모술수라고 생각하신다면 할말이 없구요…

    건필하시길 바랍니다.

    • 예, 그것이 권모술수입니다. 거대한 음모론 덩어리(그나마 앞뒤 논리조차 맞지 않는 내용으로 가득한)를 보고서랍시고 제출하는 모습이 권모술수이며, 곁가지들을 핵심적인 문제로 재포장하는 모습이 권모술수이며, 김동렬/서영석씨의 (유정회를 연상시키는) 더러운 글놀림이 권모술수입니다.

      해우소의 존재가 독자들에 의한 여론 형성을 가능케 한다고 믿으시는 모양인데, 저는 반대로 생각합니다. 추천제라면 몰라도 해우소 제도는 도리어 그 커뮤니티에 반(反)하는 의견을 매장시켜버리기 위한 악법이에요. 하물며 서영석/김동렬 등 서프라이즈의 고정 필진들이 일방적으로 황우석을 옹호하는 글을 써대고, 양심적인 노무현 지지자들이 모두 떠나버린 지금의 서프라이즈라면 더 할 말이 있겠습니까.

      “노혜경의 집으로 돌아가기”를 보세요. 어떤 사람들은 그나마 노혜경씨나 김정란씨에게 양심이 남아있다고 믿고 있고, 그래서 그 두 사람에게 서프라이즈에서 빨리 발을 뺄 것을 종용하고 있어요. 썩어버렸으니까. 안그래도 썩어가고 있던 것이 아예 죽어버렸으니까.

      서프라이즈는 황우석을 살려내기 위해 서울대 조사위를 조작위로 규정했어요. 타당한 이유도 없이 말이죠. 주류 언론들이 황우석 죽이기를 하고 있다 하시는데, 그 말이 얼토당토않은 소리임은 언론들의 논조를 그동안 살펴보셨다면 잘 아실테고, 그럼 서프라이즈는요? 황의 랩과 미즈메디를 완전히 분리시켜놓고 모든 책임을 김선종 개인에게 전가시키려 하던 – 그것도 아무 근거 없이, 고작해야 미국 나쁜놈 식의 음모론에 근거해서 – 서프라이즈는 “인권말살”에서 자유롭단 말입니까?

      그래도 예의가 있으신 분 같은데, 서프라이즈의 글만 읽지 말고 적어도 논문 초록과 결론이라도 읽어 보세요. 하비지란 사람의 과학적 논증이란 게 얼마나 허술하기 짝이 없는 것인지 뼈저리게 느껴 보세요. 노혜경씨가 서프라이즈의 “황빠질”에서 대중의 희망을 느꼈다고 궤변을 늘어놓지만, 서프라이즈는 해우소 제도를 통해 죽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히히덕대는 난장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난장판을 만드는 김동렬/서영석씨의 권모술수의 장입지요. 장사꾼들이에요. 설령 황우석이 정말 억울한 것이라 해도 말이죠.

 댓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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