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목적이 이윤 추구라는 것은, 쌍팔년도 교과서부터 나오던 논리이긴 하지만 복잡해진 오늘날의 경제계에서도 확실히 유효한 명제인 것 같다. 그러나 이 명제는 너무나 간결한 나머지,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어 보인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 추구이므로 이윤을 추구하려는 기업의 행동에 사회적 제재를 가할 근거가 없다든가, 당장의 이윤을 위해 어느 정도 비윤리적이고 몰철학적인 행태를 보여도 용납할 수 있다든가 하는 얘기가 이 명제를 곡해한 대표적인 논리 중 하나다. 멜론과 도시락 서비스에 대한 얘기를 하려다가 뜬금없이 이윤 추구에 대한 얘기를 서두에 늘어놓은 이유 또한, 멜론과 도시락의 저질 서비스가 바로 이처럼 “기업의 목적은 이윤 추구”라는 명제에 대한 곡해로 인해 정당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고객을 내쫓는 다양한 장벽들

도시락의 웹사이트나 어플리케이션 환경은 매우 비직관적이다. 이는 아이튠즈(iTunes)를 비롯해, 그들이 롤 모델로 삼았을법한 다양한 온라인 뮤직 스토어에 비해 확연히 뒤떨어지는 점이다. 나는 도시락에서 나윤선씨의 <Memory Lane>을 내려받아 감상하려 했지만, 이 앨범을 앨범 단위로 감상할 수 있는 방법조차 찾을 수 없었다. 한 곡이 재생되고 나니 음악 재생이 중지되어 버렸는데, 나는 이런 기본적인 재생 기능을 찾겠답시고 도시락 어플리케이션을 헤집고 다닐 생각이 전혀 없었다. 고급 기능은 꿈도 꿀 수 없을 만큼 창이 복잡하고, 지저분하며 아름답지도 못하다. 눈이 따가울 정도로 화려하기만 하다. 그냥 창을 닫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도시락은 나도 모르게 시작 프로그램에 등록되어 윈도가 실행될 때마다 로그인 창을 띄웠다. 물론 사용자의 허가를 받는 절차가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도시락 프로그램을 설치하기 위해 번잡하기 짝이 없는 KTF의 요구를 들어주느라 지쳐버린 나는 반사적으로 클릭질을 하다가 도시락의 그 요구에도 동의해줘버린 것 같다. 며칠 후, 도시락은 업데이트가 필요하다며 나를 귀찮게 했다. 나는 업데이트를 하고 싶지 않았지만, 내 눈에는 ‘지금 업데이트’ 버튼만 보일 뿐 ‘나중에 업데이트’ 라든가 ‘업데이트 건너뛰기’ 라든가 하는 선택지는 보이질 않았다. 심지어는 창 닫기(X) 버튼도 없다. 나는 Ctrl + Alt + Delete 키를 눌러 도시락 프로그램을 종료시켜야 했다. 또한, 업데이트를 하지 않으면 다시는 도시락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난감한 부분은, 틀림없이 320kbps로 표시되어 있는데도 노래의 음질이 형편없었다는 점이다. SG 워너비 따위의 팝 가수의 노래를 듣기에는 부족함이 없을지 모르지만, 보컬리스트의 목소리 뿐 아니라 피아노 소리, 바세 소리 하나하나가 중요한 재즈 뮤지션의 노래를 듣기에는 너무 부족하다. 숫자로만 320kbps지, 실제로 귀가 느끼기엔 64kbps 쯤 되는 것 같다. 평소 128kbps나 192kbps 정도의 AAC 파일로도 충분히 깊은 음악을 즐기던 내 막귀를 생각하자면, 도시락은 음원 자체가 불량하거나, 플레이어의 음원 재생력이 심하게 떨어지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지속 불가능한 모델

그러나 사실 이런 문제는 매우 말초적이고 지엽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SKT나 KTF의 음원 서비스의 진짜 문제는 그들이 독점적인 권력을 남용하여 비정상적인 수익 구조를 고착화시키고 있다는 데 있다.

디지털 컨버전스라는 미명 하에 MP3 플레이어 기능을 포함한 핸드폰들이 대거 출시되고 있다. SKT나 KTF 등의 통신사가 휴대폰 제조업체에 압력을 행사하여 이러한 ‘디지털 컨버전스’ 형의 다기능 핸드폰 생산을 강요한다는 것은 이미 수많은 미디어를 통해 보도된, 삼척동자도 아는 비밀(?)이다. 물론 이 MP3 핸드폰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SKT와 KTF의 음원 공급 서비스인 멜론이나 도시락을 이용해야만 한다. MP3 핸드폰에서는 멜론이나 도시락에서 구매한 노래나, 그들이 제공한 프로그램을 통해 컨버팅한 노래만을 재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신사와 핸드폰 제조업체 사이의 역학관계에서 통신사가 상대적으로 우위에 서 있는 탓인데, 전국민이 핸드폰 하나 쯤은 소유하고 있는 오늘날같은 시대에 이러한 SKT와 KTF의 독점력은 자연스럽게 음원시장마저 그들의 손아귀에 고스란히 들어오게 만든다. 핸드폰을 사면 MP3 기능이 들어있고, 이왕 산 핸드폰에서 그 기능을 이용하려면 멜론이나 도시락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독점이 독점의 꼬리를 무는 구조다.

음원시장의 수익구조는 극단적으로 통신사에 유리한 구조로 되어 있다. 총수입을 10으로 본다면 통신업자가 5, 콘텐츠 공급업자가 2, 음반사와 창작자(저작자, 가수, 기획사, 제작사 등을 모두 포함)가 3을 가져가는 구조다. 기존 음반시장(CD/테이프/LP 시장)에서 음반사와 창작자가 가져가는 몫이 약 5~6 정도였음을 고려해볼 때, 유통업체의 몫은 두 배로 늘고 실제 음악을 창작한 이들의 몫은 반으로 줄어든 셈이다. 그나마 그 3의 몫 중 대체 얼마를 기획사와 제작사가 가져가는지는 또 알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시장논리에 그 누구보다 밝을 기획사와 제작사 사장들이 자신들의 이득을 포기하고 가수와 음악가들의 이익을 보전해줬을 것 같지는 않다.

이런 모델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뮤지션들에게 돌아갈 몫이 절반 이하로 주저앉은 이상 양질의 음악이 생산되리라는 기대는 접어야 한다. 그래도 인디 음악가들이 있지 않냐고? 음원시장에서 인디 음악가들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대체 누가 럭스의 노래를 컬러링으로 쓴단 말인가. 게다가 멜론과 도시락을 이용하는, 음악에 별 관심없는 보통 청자들의 마우스는 문근영의 <&Design>이나 김아중의 <아베마리아> 같은 엔터테인먼트로 쏠리지 진정성있는 음악가들의 걸작으로 가지 않는다. 단순한 사고실험만으로도, SKT와 KTF가 독점한 음원시장은 인디 뮤지션에게 더욱 불리해질 것임이 명백해 보인다.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

음악은 아주 독특한 상품이다. 여기 ‘갑’이란 사람이 2주간 혼신의 노력을 다하여 ‘구리더 찬가’란 제목의 노래를 만들었다고 가정해보자. 그가 인터넷에 자신의 음악을 업로드하든, CD 형태로 제작하여 배포하든간에 일단 노래가 완성되고 나면 추가비용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소비자들은 ‘구리더 찬가’를 들음으로써 느끼는 행복이 냉면 한 그릇을 먹음으로써 느끼는 행복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4천만 국민들이 모두 ‘구리더 찬가’를 듣는다면, 이 나라엔 냉면 4천 그릇어치의 행복이 생기는 셈이다. 만일 노래가 아니라 냉면을 통해 같은 행복을 만들고자 했다면, 엄청난 양의 면과 육수, 고기와 물이 필요했을 것이고, 만만찮은 환경오염과 음식쓰레기를 발생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음악은 다르다. 일단 세상에 탄생한 ‘구리더 찬가’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는데는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 그럼, 만일 2명만이 이 노래를 듣는다면? 이 나라엔 고작 냉면 2그릇 분의 행복만이 생길 것이다. ‘갑’이 바친 노력과 비용에는 별 차이가 없는데,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은 무려 2천 배나 줄어들었다.

간단한 경제학 원론을 소개하는 몇 권의 책에선, 바로 이런 이유로 음악이란 상품이 가진 독특함을 논술한다. 2명이 듣든 4천만명이 듣든 음악을 창작하기까지 드는 비용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2명이 듣느냐 4천만명이 듣느냐에 따라 그 음악이 사회에 주는 행복의 정도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음악을 사람들에게 마구 뿌릴 수도 없는 것이, 2주간 혼신의 힘을 다한 ‘갑’을 위해서도 충분한 보상이 주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구리더 찬가’를 4천만 국민들에게 마구 뿌린다면, 그 누구도 ‘갑’을 위한 보상을 지불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굉장한 속도로 발전하는 인터넷은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강력한 플랫폼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음반사는 여전히 저작권 개념을 폐쇄적이고 배타적으로 주장할 뿐이며, 통신사는 인터넷 시대의 권력이동에 눈이 멀어 ‘구리더 찬가’를 만든 갑에게 충분한 보상을 건네는 대신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가슴아픈 일이지만, 인터넷이란 플랫폼은 소비자가 기대했던 패러다임 대신 더욱 천민적인 황금만능주의의 패러다임으로 음악을 가두게 된 것 같다. 그렇다면 이미 고착화된 패러다임 위에서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멜론과 도시락에 갇힌 음악을 구하기 위한 사회적 운동밖에 없지 않을까?

  6 개의 반응

  1. 진지하게 잘 읽고있다가.. 구리더 찬가라니 ㅠㅠb
    안드로메다로~

  2. 반박할 여지도 없이 동감가는 글이네요. 럭스 노래 컬러링으로 쓸까 잠시 고민했습니다. -_-;

  3. (음질은 쥬크온이 제일 좋은 편에 속하죠)
    쥬크온은 다 좋은데 음원량(특히 해외ㅠ)이 많지 않은게
    (국내 스트리밍이 다 그렇죠ㅠ)

  4. 역시 저만의 생각이 아니었군요…
    멜론. 도시락. 진짜 무슨생각으로 운영하고 있는지….
    멜론 쓰고있습니다만 정말 점점 더 이상해지고 있는.. -_-

  5. 소비자 입장에서, 통신사의 음악 서비스가 차라리 완전히 실패했으면 좋겠습니다. mp3 폰이라는 싸이언의 ‘샤인’과 도시락 서비스를 사용중인데, 샤인에 mp3 파일을 넣어본 적은 한 번도 없고, 도시락 서비스는 곧 해지할 예정이에요. 비직관적인데다, 경악할 정도로 불편하거든요. 이따위 서비스를 대체 쓰라고 내놓은건지……

    그래서 독점이 무서운건가 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SKT와 KTF가 가진 압도적인 독점력 때문에 멜론과 도시락이 승승장구하고 있잖아요. 게다가 문화로서의 음악이 몰락해갈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고……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노무현 행정부조차 문화산업보다 통신산업에 치우쳐져 있는 마당에 다음 대통령으로 유력하다는 분들은 문화에 대해 몰지각한 이명박이나 문화의 다양성이 뭔지도 모르는 것 같은 공주님 같은 분들이니…… (이명박의 발언 하나 하나를 접해본 분들은 다들 동감하시겠지만, 문화 분야에 대한 이명박의 인식은 거의 무뇌충 수준이죠. -_ㅠ) 아, 못막아요.

    그렇긴 하지만 이승환 님, 럭스 노래를 컬러링으로 쓰면 친구들이 떨어져나갈지도 몰라요. ㅎㅎㅎㅎㅎㅎ

  6. 내가 예인님 트위터 타고 왔는데
    악성코드 깔려있다고 그래서 내가 무시하고 계속하기 눌렀어.
    크롬이 이상한건가…

 댓글을 씁니다.

(필수 입력)

(필수 입력)

다음 HTML 태그 및 속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trike> <strong>

   
임예인의 새벽 내리는 길. 이 사이트의 글은 출처를 명기하여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Suffusion theme by Sayontan Sin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