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너머, 버니 샌더스 열풍의 이면을 톺아보기

더이상 찻잔 속의 돌풍이 아니다

2016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이 본 레이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대세’로 불렸던 힐러리 클린턴의 지지세는 여전히 50% 를 넘는 등 공고하지만, 최근 일부 주에서 버니 샌더스가 앞서가는 결과가 나타나며 흥미를 고조시키고 있다. 미국 언론 역시 버니 샌더스를 힐러리 클린턴의 대선 가도를 막을 수 있는 진짜 경선 라이벌로 부각시키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진보 언론을 중심으로 그의 이름이 쉴새없이 오르내리고 있다.

태평양을 넘어 헬조선에서 뜬금없이 샌더스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까닭은 그가 자본주의의 정점인 미국에서 사회주의자를 자처한 유력 대선 후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월 스트리트의 금융가와 자본가들에 직접적인 비판을 가했고, 무상교육과 국가가 주도하는 보편적인 단일 의료보험 확대를 주장하는 등 급진적인 사회주의 정책을 내놓았다. 한국 언론은 버니 샌더스가 최근 강렬한 모습을 보이고 있음에 주목하며, 힐러리 대세론은 이미 사라졌고, 토론회에서도 샌더스가 압도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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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풍의 이면

인터넷 투표는 이런 진단의 좋은 근거다. 현지 미디어들은 토론회가 끝나면 앞다퉈 인터넷 투표를 열어 누가 승자였는지를 묻는데, 여기서 샌더스는 매 토론회마다 80% 중반에서 90% 초반에 이르는 압도적인 지지를 얻는다.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샌더스를 상찬하는 목소리가 수백 개의 좋아요를 얻고 범람하고 있다. 토론회가 이뤄지는 동안, 미국 전역에서, 샌더스는 가장 많이 검색되는 후보자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이면이 있다. 주류 언론은 인터넷 여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작년 12월 토론회에선 거의 모든 언론이 클린턴의 논리가 우세했다고 평가했다. 경향이 샌더스가 압도했다고 평가하는 올 1월 토론회 역시, 언론의 평가는 백중세에 가까우며, 힐러리의 승리를 말하는 언론도 많다. (물론 샌더스의 승리를 말하는 언론도 많다.)

언론만 그러는 게 아니다. 민주당 유권자들을 정교하게 표본 추출해 여론조사를 시행할 경우 거의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클린턴이 더 우세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마찬가지로 잘 설계된 여론조사에서 클린턴의 지지율은 부침이 있긴 하지만 적어도 아직까진 매우 안정적이다.

이런 인터넷과 오프라인 사이의 괴리는 한때 한국 대선을 강타했던 “문국현이 대통령이래” 운동을 연상케 한다. 2007년 당시 대선 후보로 나섰던 문국현은 많은 인터넷 투표에서 1위를 기록하는 등 강력한 모습을 보였지만, 정작 대선 본게임에서는 5.8%라는 낮은 지지율로 낙선했다. 물론 샌더스의 지지율은 이보다는 훨씬 높으며, 대선 레이스도 더 안정적으로 진행하고 있지만.

이는 샌더스의 급진적인 목소리에 호응하는 매니아 층의 존재 때문으로 보인다. 무난한 정책 수행 능력을 입증해 왔던 클린턴에 비해 샌더스는 새로우면서도 강렬하다.  매니아의 사랑을 받을 만 하다. 또한 클린턴은 35세 이상 연령층에서, 샌더스는  그 미만의 연령층에서 주로 지지받고 있다는 점도 온라인 여론과 실제(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합산한) 여론의 괴리에 한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혜택을 볼 이들이 곧 가장 큰 적이라는 역설

샌더스가 클린턴의 ‘진짜 맞수’로 부각되면서, 언론은 샌더스의 공약에 대해 더 세밀한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복스의 기사는 일종의 요약판이다.

예를 들어, 건강보험 문제를 보자. 샌더스는 (한국과 같이) 전국민 보편 건강보험을 시행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보험회사들과 맞설 수 있는 배짱 뿐이라고 주장해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이는 현실과 거리가 먼 진단이다.

폴 크루그먼은 뉴욕 타임즈에 기고한 칼럼에서 건강보험 개혁을 방해하는 세 가지 요소를 꼽는다. 첫번째는, 샌더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기성 보험회사의 반발을 이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배짱만 있으면 된다는 식의 해법을 내놓지는 않는다. 중요한 건 그들이 현 의료제도의 중요한 톱니바퀴이며, 그냥 빼 버리면 그만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이를 위해 중산층에까지 조세 부담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조세 부담을 높이고 보험 보장을 확대하는 것이 더 나은 방향임엔 분명하다. 하지만 알잖는가. 심지어 이미 전국민 보편 건강보험이 시행되고 있는 한국에서도 조세 또는 건강보험료를 인상하여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이자 하면 극렬한 조세저항이 일어날 것인데, 하물며 미국은 어떻겠는가.

세 번째 문제는 이미 다수의 미국인들이 기존 민영 보험을 통해 충분한 보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전국민 보편 건강보험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이것을 일단 무너뜨려야 한다. 결과적으로 더 나은 건강보험제도를 얻게 된다 해도, 이 사람들이 당장의 혜택이 사라지는 것을 감내하고 개혁을 받아들일 것인지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결국 전국민 보편 의료보험 시행을 위한 가장 큰 적은 샌더스가 포장하듯 보험회사를 비롯한 거대한 기득권이 아니라, 그 혜택을 볼 국민들 그 자신이라는 것이다. 오바마의 개혁안이 그렇게 한참을 좌초했듯이.

 

수레는 가득 차 있는가

샌더스는 이외에도 다양한 문제에서, 슬로건을 내걸 뿐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진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부딪쳤다.

그가 현재의 인기를 얻게 된 기반인 월 스트리트 개혁안 또한 그렇다. 그는 월 스트리트의 탐욕을 지적하며 “너무 커서 죽을 수 없다(대마불사, Too big to fail)는 것은 곧 너무 비대하여 존립할 수 없다는 것(Too big to exist)”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이렇게 주장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명백합니다. 21세기 글래스-스티걸 법을 도입하여 거대 금융기관들을 해체 분산해야 합니다.”

비판론자들은 그가 말하는 ’21세기 글래스-스티걸 법’에 내용이 없다고 지적한다. 금융기관 해체 분산이 일으킬 파급효과를 전혀 예측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법에는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해체할 금융기관을 정하고 어떻게 해체할지에 대한 내용이 비어 있다는 것이다.

무상 등록금 정책 또한 마찬가지다. 월 스트리트에서 거둔 세금으로 무상교육을 이루겠다는 슬로건은 열광적인 박수갈채를 받았지만, 그 시행 과정에서 일어날 문제들에 대해서는 눙치고 넘어가는 인상이 강하다. 현재의 대학 시스템은 무상교육을 감당할 수 있는가? 비용이 월 스트리트에서 걷어들이는 세금을 초과한다면, 그 이후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클린턴의 가장 큰 강점은 샌더스의 가장 큰 약점이기도 하다. 외교다. 국무장관으로서 오랫동안 미국 외교의 선봉에 섰던 클린턴과 달리 샌더스의 외교 능력은 증명된 것이 없다. 물론 동아시아 문제를 포함해서 말이다. 이는 그가 월 스트리트를 해체하든, 무상으로 대학에 보내든, 건강보험을 도입하든 딱히 수혜를 볼 게 없는 헬조선인으로서 – 그의 대통령 당선을 우려스럽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Game of Thrones

물론 그렇다 해서 샌더스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누구나 환호할 만한 슬로건과 강력한 개혁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정치 경험 없이 갑자기 나타나 열광적 지지를 얻곤 하던 한국식 묻지마 대선후보들과는 분명히 차별화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조차 왕좌의 게임은 한 차원 높은 수(手)를 필요로 한다. 누구나 슬로건을 내걸 수 있다. 복스가 말하는 것처럼. 심지어는 강대한 권력을 가진 국회의원조차도 슬로건을 내걸고 사람들을 이끌어나갈 수 있다. 꼭 당장의 현실적인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는 없다. 그 또한 먼 미래를 위한 한 수가 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왕관의 무게는 다르다. 대통령은 정책을 현실에 구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존재이며, 또한 그럴 의무를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 반면 그 막강한 권력의 임기는 4년, 재선에 성공해도 8년이다. 실현 불가능한 슬로건은 대통령 후보에겐 그저 허언에 불과한 것이다.

그의 슬로건은 매력적이지만, 유토피아 어딘가를 거니는 느낌을 줄 때도 많다. 검증되지 않은 그의 슬로건이 현실에 적용할 수 없는 이상에 불과함이 드러난다면, 정책은 의도와는 전혀 다른 효과를 낼 것이다. 최악의 경우 정치적 혼란이나 경기 불황에 이를 수도 있다.

반대할 이유를 딱히 찾을 수 없는 이상적인 제안들조차도 난관에 부딪치기 마련이다. 정책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타협의 예술이기도 하다. 샌더스의 건강보험 개혁안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극렬한 반대에 부딪칠 것이다. 과연 타협의 예술을 발휘할 여지가 있을까.

원하든 원치 않았든 샌더스의 게임은 사실상 이제 시작되었고, 열광적인 지지자들과 함께 시작한 그의 게임은 이제야 적을 만나게 될 것이다. 클린턴도 공화당도 아닌 그 자신 말이다. 비록 해가 지고 뜰 때까지 날아야 닿을 수 있는 먼 땅이지만, 지구라는 왕국에 미국의 대통령이란 곧 왕좌와 다를 바 없으니, 먼 반도 속국에서 공주를 모시는 우리 또한 샌더스의 게임에 좀 더 집중할 때가 되었다. 단순한 열광을 보내는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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