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참 슬픈 시대다. 뮤지션이 한 장의 앨범을 발표하면, 청자는 소리바다에서 mp3 파일 따위를 한 곡 내려받아 듣고서는 “이 뮤지션의 노래를 들었다”고 단언해버린다. 또 어떤 이는 심지어 10초, 혹 30초짜리 후렴구만, 그것도 보컬의 목소리만 듣고 노래를 평가한다. 네이버 블로그나 싸이월드 미니홈피 따위에 범람하는 배경음악들은 이제 인터넷의 소음 공해로 취급당하고 있다.
이 슬픈 시대에, 노래를 들으면 들을수록 보이지 않던 매력이 더 많이 느껴진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조용한 방에서 한 장의 CD를 들음으로써 뮤지션의 감정곡선을 청자가 함께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것이야말로 엔터테이너가 아닌 진정한 뮤지션의 음악을 들을 때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아닌가.
이승열의 <In Exchange>는 그런 앨범이다. 2002년 발표되었던 그의 전작 <이날, 이때, 이즈음에>가 그랬듯이, 이 앨범 역시 첫 트랙부터 대단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그렇다고 불편한 것은 아니다. 그는 결코 자신의 음악과 자신의 가치관, 자신의 삶과 메시지를 청자에게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음악은 CD에 담겼을 때도 충분히 멋지지만, 최종적으로 청자와 커뮤니케이션함으로써 그 본태를 탄생시킨다. 청자의 삶, 청자의 가치관, 청자의 의도에 따라 다른 노래를 듣게 되는 것이다. 3만 명의 청자가 들으면 3만 개의 노래가 들리고, 10만 명의 청자가 들으면 10만 개의 노래가 탄생한다.
첫 트랙 <친구에게, 나에게>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보컬리스트 이승열의 매력적인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두 번째 들었을 때, 나는 앨범 전반에 깔린 절제와 조화의 사운드에 반해버렸다. 세 번째 들었을 때, 나는 나보다 열 다섯 해 일찍 태어난 이 뮤지션이 우리들에게 외치는 ‘포기하지 말라’는 소리에 가슴 깊은 격려를 얻었다. 그의 노래는 편안하게 들을 수 있으면서도, 한 꺼풀 한 꺼풀 아무리 벗겨도 밑천이 드러나지 않는 무한한 매력을 품에 안고 있다.
두 번째 트랙 <기억할게>는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2집의 타이틀곡이라 할 만한 노래다. 이제는 참 진부한 얘기겠지만, 뮤직비디오 속에 활자로 등장하는 U&ME BLUE의 <cry… our wanna be nation!> 따위가 눈에 밟힌다. 팬의 한 사람으로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지만 <cry… our wanna be nation!>은 이승열의 황금시대였다. 당대에 인정받지는 못했다지만, 지금까지도 U&ME BLUE의 앨범은 ‘한국대중음악사 걸작 몇 선’ 같은 가십성 순위에 늘 자리매김할 정도로 마스터피스로 칭송받고 있으며 모던 록 사운드의 황금률로 자리잡고 있다.

<기억할게>는 어쩐지 우리 모두의 황금시대에 대한 찬가처럼 들린다. 포기해야만 했던 꿈의 여로와, 가장 행복했던 황금시대에 대한 찬가. 사이키델릭에 빠진 어떤 뮤지션이 결국에는 웹 디자이너가 되고, 동경하던 TV 쇼 아이돌이 되고 싶었던 소년이 결국 평범한 직장에서 평범한 잡무로 하루하루를 영위하며, 예술을 진실로 사랑한 어떤 이가 돈 하나 때문에 의사가 되는 이 시대, 꿈을 잃어버린 지금 그 아름다웠던 황금시대에 대한 기억.
그러나 그 목소리는 회한이라기보다 격려의 메시지에 가깝다. 그는 황금시대를 잃어버린 우리들을 질타하기보다 따스하게 감싸안아주려는 목적으로 기타를 치는 것 같다. 곧 이어지는 <우리는> 이나 <스물 그리고 서른> 같은 노래의 사운드가 목사의 축도처럼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덕분이다. <아도나이(나의 주)>께 한없이 의지하는 기독교인처럼, 어머니의 가슴을 향해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아기의 움직임처럼 나 또한 이 (악기 목록으로 따지자면) 간결하면서도 (그 질감을 얘기하자면) 무한히 풍성한 사운드 속에 내 몸을 맡긴다.
10번째 트랙 <탕!>이 얘기하는 것처럼, 이 앨범은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세상을 살고 갔던 모든 사람들, 세상을 살아가게 될 모든 이들”을 위한 격려이며 위로처럼 느껴진다. 이제 또 이런 위로를 맛보기 위해 얼마나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나 하고 보니, 직접 인터뷰를 통해 “앞으로는 일년 반을 넘기지 않고 앨범을 낼 계획”이라고 한다. 기쁜 일이다. 일 년 반만 기다리면, 이 존경하는 뮤지션으로부터 또 한 번 최고의 음악을 선물로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별점 따위가 난무하는 시대, 굳이 이 앨범에 별점을 매겨야 한다면 별 넷 반은 바쳐야 할 것이다. 모자란 반 개는 더욱 풍성하고 아름다울 3집을 위해 남겨놓은 여분이다.
올블에서 타고 왔습니다. 이번 앨범에 대한 제 생각과 굉장히 비슷한 듯. 개인적으로 1집은 ‘새벽 2시의 bar’, 2집은 ‘오후 1시의 회사 앞 벤치’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정치성향도 굉장히 비슷한 듯 하시군요. 주류경제학 중 규범 경제학의 영역과의 접점이 어떤걸까 고민해보긴 하는데요. 현재까진 아마르티아 센이나 조지프 스티글리츠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제 일독 해보시길…
공부가 짧은 탓에, 한 번도 못 들어본 이름입니다 -_ㅠ 정말 좋은 공부가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도서관에 가서 당장 찾아볼게요. ^^;
이승열 2집, 참 좋습니다. 실망스럽지 않았어요. 1집이 참 꽉 짜여진 앨범이었단 걸 생각해보자면, 기대치가 한껏 높아진 이 이지 리스너의 기대를 그대로 충족시켜줬다는 것만으로도 이 뮤지션이 필요로 했을 각고의 노력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는 누구이길래… 공중파에서 이 노래를 외치는가.. 그것도 상당히 수준있는 사운드와 보컬을 들려 주고 있다. 헉… 보물의 발견이다.. 나에겐… You said love is a temple, love a higher law…………..
허허 3년전의 글인데 댓글을 다는군요;;
이승열의 팬으로서 참으로 훌륭한 평인 것 같아 기분이 좋군요
한가지 걸리는…마지막 부분에… 앞으로는 일년반을 넘기지 않고 앨범을 내겠다……..
허나 지금 3년이 지났어요! 슬픕니다ㅠㅠ
작년에 유앤미로 10개월 활동하시다가, 신곡까지 만들어 놓으시고 갑자기 올해부터는 솔로로 활동하기 시작하시는게 의아하지만…
혹시 최근에 공연 가셨는지요? 거기서 솔로 3집에 들어갈 노래들을 들어봤는데 정말 놀랍게도 1집2집과는 또 다른, 좀 더 진보된 음악을 들려주시는걸 보고 감탄을 했습니다..
아우 이밤에 다시 앨범을 들으며 횡설수설 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