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의 전쟁

경기도 일대를 둘러싼 고구려와 백제의 치열한 영토 싸움의 역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반도의 중심이자 풍요로운 평야 – 이 땅을 양국이 욕심낸 까닭이야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 같지만, 사실 양국의 귀족 계층이 진짜 이 땅을 원했던 건 그런 뻔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이 지방의 서해 연안에 위치한 작은 마을 구라촌에서 채취되는 독특한 조개가 진짜 이유였다.

이 조개는 마치 꼬막을 닮았으면서도 그 크기가 매우 컸는데, 비린 맛이 없고 쫄깃해 구라촌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였다. 하지만 어획량이 워낙 적어 구라촌 사람들도 누구 결혼, 누구 환갑 같은 큰 잔치에서만 꺼내놓을 정도로 귀한 음식이기도 했다. 하지만 구라촌 사람들은 딱히 욕심을 부릴 줄 모르는 순박한 시골 사람들이었기에, 조개를 사이좋게 집집마다 나누어 평화롭게 즐겼다.

하지만 전란의 와중에 고구려와 백제가 이 땅을 한 번씩 점령하면서, 비극은 시작되었다. 구라촌 사람들이 당시 군을 이끌고 있던 귀족에게 이 조개를 대접하며 귀족 사회에 조개에 대한 소문이 퍼졌던 것이다.

순식간에 이 조개는 귀족층이 가장 사랑하는 음식이 되었다. 하지만 귀족들은 구라촌 사람들처럼 순박하지 않았다. 그들은 조개의 적은 어획량에 불만이 가득했고, 유력한 집안에서는 이 조개를 독점하여 이문을 누리려 했다.

더 큰 비극은, 구라촌 사람들이 이 조개를 고구려의 귀족에게도, 백제의 귀족에게도 대접했다는 것이었다. 구라촌이 한쪽 나라에 점령당하면 다른 한쪽 나라는 조개를 맛볼 수조차 없었다. 결국 귀족들은 영토 확장과 삼국 통일의 대의 따위를 내세워 전쟁을 벌였고, 구라촌 일대는 가장 치열한 전장이 되었다.

전장에서 죽는 건 군인만이 아니다. 순박했던 주민들은 작은 마을을 덮친 전쟁의 불꽃을 미처 피하지 못했다. 수십 명이나 되었던 마을의 주민들은 전쟁이 끝나고 나자 딱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 전쟁 직전 환갑을 맞았던 할머니였다.

그는 고작 작은 조개 따위가 전쟁을 불러온 현실에 넋을 놓고 말았다. 이내 마을은 조개를 선점하기 위해 귀족들이 몰려들어 원래의 모습보다 훨씬 휘황찬란하게 복구되었지만, 죽어버린 사람들은 돌아올 수 없었다.

할머니도 그리 오래 살지 못했다. 매일같이 혼잣말처럼 “피를 불러온 게야, 그 조개가, 피를 불러왔어…” 라 중얼거리며 끼니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다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숨을 거두었다.

희한한 일은 그 후에 일어났다. 할머니가 죽자 구라촌에는 거짓말처럼 조개가 단 하나도 나지 않기 시작했다. 사람이 떠나자 조개들도 떠나버린 것처럼. 귀족들은 당황하다가 이내 볼 이익이 없어진 마을을 하나 둘씩 떠났다.

그렇게 귀족들이 전부 떠나버린 후, 아마 수십 년 쯤이 더 지났을 어느 날엔가, 마을엔 조개가 다시 발견되었다. 새로이 마을에 정착한 주민들은 이 조개를 피조개라고 이름지어 부르기 시작했다. 왜 이 조개가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조개가 피를 불러왔다는, 원한인지 체념인지 알 수 없는 할머니의 넋두리가, 이름 없던 이 조개에 이름을 붙여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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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훼이크고 왕십리 먹거리장터 실내포장마차 피조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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