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의 결산이 각 카테고리별로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2006년의 책읽기에 대해 정리를 해 봤어요. 다른 분야에 비해 독서 분야의 정리가 늦어진 이유는, 사실 2006년 한해동안 “올해는 학교 수업에 충실해보자”는 다짐을 한 덕에 독서량이 많이 줄어든 탓이 컸지요. (이 말인즉슨 2005년의 그 무지막지한 독서량은 수업시간에 수업을 안 들은데 기인한 것이란 얘긴데…..)
2006년 독서의 테마는 역시 ‘경제’ 였습니다. ‘경영’이나 ‘재테크’ 말고 순수한 ‘경제’요. 따라서 2006년 한해동안 가장 가치있었던 독서는 역시 <국부론>이었던 것 같아요. 이 책이야말로 바로 경제학의 시작이며 단 하나뿐인 진정한 경제학의 원전이니까요. 국부론을 읽으면서 느낀 가장 큰 깨달음이란, 경제학이란 바로 ‘사람에 대한 애정’에서 시작된 학문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국부론>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약자들에 대한 애정과 당시 신흥 자본가 계급(후에 맑스에 의해 부르주아지로 정의되는)에 대한 날선 비판의식을 확고히 드러내고 있어요. 아담 스미스가 오늘날 한국에 태어난다면 좌파로 정의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요. 그가 당시 ‘보이지 않는 손’과 시장경제주의를 제창한 이유는 노동자들의 과도한 권리 요구나 노조활동 때문이 아니라, 구빈법(The Poor Law)으로 대표되는 정부의 반인권적 조항과 신흥 자본가 계급의 담합행위, 일부 전문직 단체(오늘날로 따지자면 의사협회 정도)의 폐쇄적 업권 사수 등이 경제를 혼탁화하고 있기 때문이었죠.
반면 오늘날에 이르러, 경제학에서 철학적 고민이 실종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경제학도도 아닌 주제에 이런 비판을 던지기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지만, 경제학이 수식과 함수의 세계로 들어가면서 숫자를 늘리기 위한 장난질로 전락해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어요. 수치만 놓고 볼 때 노무현 정부와 그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거둔 경제적 성취는 고무적이며 또한 상당히 탄탄한 편이죠. 그러나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실업의 공포와 과도한 직무, 사라진 여가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어요. 문제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이런 부작용들이 대부분 개량화되기 어려운 부분이라는 데 있습니다. 숫자상으로는 끝없이 발전해가고 있지만 실제로는 증오의 나락을 향해 떨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죠. 물론 고전학파와 케인지언, 뉴케인지언이나 프리드먼으로 대표되는 주류 경제학자들의 학문적 양심과 각고의 노력을 폄하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이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발걸음에 더하여, 아담 스미스가 놓치지 않았던 그 철학적 고민을 더해 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피력한 거라고 이해해 주세요. 조중동의 시론이나 칼럼 따위에 한국의 주류 경제학자라는 분들이 기고한 글을 보세요. 왜 제가 이런 바람을 갖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으실걸요.
경제학에 대한 관심은 몇 권의 교양도서를 거쳐 이제 좀 더 본격적인 공부를 해 보고 싶다는 욕심으로 이어졌습니다. 2007년에는 경제학도들이 실제로 밟는 학부 과정을 따라가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은 거시경제학의 바이블(?)로 일컬어지는 정운찬 교수의 <거시경제론>을 읽고 있는데, 이제 막 IS-LM-BP 곡선과 AS-AD 곡선에 대해 대강 일독했습니다. <거시경제론>과 더불어 이준구 교수의 <미시경제학>을 읽으려는 중이고, 이 두 권의 책을 일독한 뒤에는 경제학사와 화폐금융론, 그리고 정치경제학 쪽으로 역시 교과서격인 책을 한 권 정도씩 골라 일독할 생각이에요. 함수나 수식이 좀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예전에 일명 ‘파란’ <양자역학> 책을 처음 들여다봤을 때 느껴졌던 그런 막막함은 다행히 없더라구요. (역시 공학 분야는 지옥이에요. 의학도 만만치 않구요.) 저는 전공에 매몰되어 직업을 선택하기보다, 공무원이나 정책연구원, 사업이나 연구/교수같은 여러가지 분야를 모두 열어놓고 장래를 선택하고 싶어요. 아마 지금 하고 있는 경제학 공부가 장래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교양 수준에서도 이 정도 알아두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구요.
어떤 사람들은 책을 읽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사회와 세상에 나가서 직접 부비고 체험해야 진정한 앎이 쌓이는 거라고 얘기하죠. 맞는 말이에요. 하지만 한편으론 어불성설이기도 하죠. 똑같은 경험과 체험을 해도 서로가 받아들이는 수준이 다르거든요. 얼마 전 문화관광부가 후원한 젊은 작가들의 창작워크숍 “Threshold 13전”에 다녀왔는데, 평소 이런 분야에 관심이 있던 제 친구가 여기저기 호기심을 갖고 둘러보았던 것과 달리 저는 큰 감흥을 받을 수가 없었어요. 이런 거죠. 책은 원료와도 같습니다. 현대차 노조의 파업을 보면서 누군가는 그냥 신문의 프로파간다가 유도하는대로 “저 귀족 노조들” 하는 감정적인 비난만 할 거에요. 하지만 누군가는 그로부터 맑시즘에 기반한 프롤레타리아의 정당한 요구를 읽기도 하고, 누군가는 총공급곡선의 이동과 스태그플레이션 이론을 읽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대기업 노조의 파업에 의해 도리어 하청업체나 중소기업의 노동자들이 피해를 본다는 역설적인 피라미드 구조를 읽기도 하죠. 배경 지식, 가치관 따위의 차이 때문이에요. 책은 가장 효율적으로 이런 ‘배경’을 쌓는 도구가 될 수 있으며, 따라서 독서에는 무한한 가치가 있습니다. 다만 고민과 명상이 후행되지 않는 독서에 가치가 없을 뿐입니다. 따라서 저는, 계속 읽고 고민하겠습니다. 우리, 같이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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