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의 아니게 에픽 하이의 신보에 대한 얘기로 세 개째 포스팅을 하게 되었는데, 사실 나는 에픽 하이의 팬(Fan)은 아니다. 앨범도 내가 돈 주고 산 건 (이번 신보까지 합쳐) 두 개밖에 없고.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픽 하이의 4집은 요 일 년 새 나온 앨범들 중 가장 기대했던 작품이었다. 그만큼 국내 뮤지션들의 창작 활동이 왕성치 못했던 탓이다. 작년 신보를 발표한 코코어나 소규모…가 있긴 하지만 이들의 음악은 내 취향이 아니다. “기적같은 보컬리스트” 한희정이 소속된 밴드인 푸른새벽이 <보옴이 오면>을 발표하긴 했지만 전작 <Submarine Sickness>와 <Waveless>에서 한껏 실망했던터라 아직 들어보지조차 않았고, 이승열이나 이장혁은 아예 앨범을 낼 생각이 없는 것 같고…… 좋아하는 음악가들이 다들 침묵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이지 리스너를 위한 좋은 힙합 앨범이 나왔으니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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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튠즈 = 스포일러. 젠장

<평화의 날>이 그랬고 <FLY>가 그랬던 것처럼, 이번 타이틀 <Fan>의 집중도도 <I Remember>에 비해 못하다. 앨범 전체의 집중력 역시 <High Society>에 뒤진다 싶다. 그러나 진보하지 않고 있는 건 아니다. 말장난같지만 그들의 진보는 계속되고 있다. 억측일런지도 모르지만, 타블로는 “힙합다운 힙합을 얘기하지 않으면서 힙합다운 힙합을 하는 법”에 대해 계속 연구하고 있는 것 같다.

피타입을 예로 들어보자. 피타입은 훌륭한 힙합퍼다. 다들 아는 사실이다. 그는 힙합다운 힙합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로부터 “힙합다운 힙합을 하라”는 교훈조의 얘기까지 들어줄 생각은 없다. (‘지존’ 가리온이라면 모를까. 낄낄) 그런데 피타입은 앨범내 줄곧 “힙합다운 힙합을 하라”고 설교한다. 내가 피타입의 랩 중에 가장 좋아하는 랩은 “Starlight(헤리티지)”에 삽입된 것이다. 그 예술적인 랩 실력으로 “힙합다운 힙합”이라고 않는 것만으로도 아주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감상으로, <Flow>는 그 대척점에 서 있는 것 같다. 에픽은 말한다. “음악으로 자위하는 그런 초보들은 / 암전처럼 꺼져”. 물론 그게 피타입같은 진정성있는 랩퍼를 향한 비난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피타입을 ‘흉내내는’ 랩퍼들도 <Flow>의 칼날으로부터 피해갈 수 있을까? 그럼 비평자들은? “힙합다운 힙합”을 하지 않는 이유로 에픽 하이를 까대기에 바쁘고, 예술성과 진정성을 내세우며 대중적 취향을 깎아내리는 비평자들은 어떠한가?

이것은 늙은이(노인구국결사대)같은 힙합 씬과 젊은 에픽 하이 사이의 싸움일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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