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하이의 신보 제목이 <Remapping The Human Soul>로 결정되었다는 것을 안 순간, 에픽 하이의
음악을 좋아하는 모든 팬들은 하나의 단어가 뇌리에 스쳐지나가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1집”!!! 한국 랩 음악 사상 가장 훌륭한
가사를 담았다는 평자들의 찬사와 함께 발표된 바로 그 앨범, 에픽 하이의 출세작 <I Remember>를 담은 바로
그 1집 앨범 <Map of The Human Soul>이 어떻게 떠오르지 않을 수 있을까?
(어거지로라도) 가사와 플로, 라임, 비트 등을 힙합이나 랩 뮤직의 주요 요소로 생각한다면, 한국 랩 음악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아마 가사였을
것이다. 수많은 MC들이 억지 라임으로 가사를 망쳐놓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 실력파라는 언더 힙합퍼들 대부분이 “힙합다운 힙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재미없는 가사로 청자들을 실망시키곤 했다. 그러나 에픽 하이는 달랐다. 그들의 가사는 평범하지만 특별한, 이른바 ‘소소함’(I
Remember, 평화의 날, FLY)에서 사회적인 모순과 거대담론(3개의 앨범에 실린 <Lesson> 연작) 까지
극과 극을 넘나들면서도 충분한 완성도를 담보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에픽 하이의 최근작들은 평자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었다. <FLY>에 쏟아진 평자들의 비판은 – 사실 그 대척점에서 쏟아진 대중들의 사랑과 별개로 – 에픽 하이에게 있어서도 쓴 아픔이었을 것이다. 사실 그렇다. 나는 <FLY>가 한국의 팝 음악으로써 최고의 정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했지만(특히 뮤직비디오와 함께 듣는 <FLY>는 최고다), 가리온에게 쏠려있는 힙합 마니아들의 귀가 <FLY>에 만족했을 리 없음 역시 인정한다. (사실은, 나도 <무투>가 <FLY>보다 100배는 더 좋은 노래라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에픽 하이 역시 3집과 <FLY>에 대해 불만족스러웠던 것으로 보이는데, <Black Swan Song>의 발매와 맞물려 타블로가 스스로의 음악에 대해 여러 가지 심경을 피력했던 적이 있다.
<FLY>에 쏟아진 대중적인 관심, 평자들의 불만, 그리고 그 완성도에 대한 에픽 하이 스스로의 고민. 그래서 그들이 <Map of The Human Soul>의 재배치를 들고 나왔다면 내가 오바질을 하는 것일까? 아니다. 아마 내 추측이 옳을 것이다. 27곡에 달하는 트랙 리스트부터 뭔가 있어 보이잖는가? 타이틀곡은 <Fan>(뮤직비디오 보기),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는 팬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아이돌 가수의 단골 레파토리가 에픽 하이에 의해 재현되는가 싶어 식겁했드랬다. 그러나 MTV에서 우연히 들은 이 노래, 참 괜찮다. 타블로는 여전히 가사를 참 잘 쓴다. <I Remember>부터 단 한 곡도 빠지는 게 없다.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대중성에 있어서 <FLY> 못지 않고 진정성에 있어서는 <Swan Songs>를 압도하….. 는 것 같다. 뭐, 그렇다. 동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High Society>와 <Map of Human Soul>에서 느꼈던 그 ‘포스’를 다시 느낄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그들은 순수한 음악적 고민과 더불어 대중적 취향에 대한 배려까지 놓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오버그라운드 힙합 씬에서, 그리고 팝 씬을 통틀어서도 그들은 최고다. 이런 앨범마저 사주지 않는다면 아마 올해도 동방신기가 최고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는 비극이 반복될 것이다. 그리고 어떤 누리꾼들이 “한국 노래는 들을 게 없어서 음반을 살 수가 없네효”하고 찌질찌질거리겠지.
3줄 요약
1. 에픽하이 4집 사 줘야 함다.
2. <Fan>이 ‘팬’이라는 뜻이 아니라 ‘광(狂)’이라는 뜻이었을줄은.
3. 트랙 리스트에 왜 <Lesson 4> 없나요 -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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