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동순재 대 싹퉁바가지
최근 가장 재밌게 보고 있는 TV 프로그램 중 하나인 <거침없이 하이킥>. 시나리오는 물론이고 시나리오를 끌고가는 캐릭터 하나 하나의 힘이 막강한데, 그 중에서도 특히 눈에 들어오는 것이 시아버지-며느리 사이인 이순재와 박해미다. 극중에서 두 사람은 ‘이순재 여성전문한방병원’의 한의사로 같이 일하고 있다.

이순재와 박해미
이순재는 이미 퇴물이 되어버린 한의사다. ‘이순재 한방병원’의 원장선생님이시긴 한데, 정작 ‘이순재 한방병원’을 번듯하게 키워낸 것은 그가 아니라 며느리 박해미다. 나이 하나로 얻어낸 원장 자리인 셈이다. 실제로도 박해미에게 밀려 예약손님 하나 없고, 혹여 환자가 찾아오는 일이라도 있으면 “간기가 울체되어 기혈이 통하지 않고……” 운운하다 망신만 당하기 일쑤다. 심지어 마지막 자존심이라는 침술에 있어서도 며느리에게 한참 뒤진다. 어떻게든 원장 선생님다운 권위를 세워보려 하지만 이미 실권은 며느리에게 다 넘어간 터, 그의 호통소리는 무섭다기보다 웃길 지경. 심지어 야동을 보다 가족에게 걸려 누리꾼들로부터 ‘야동순재’란 별명까지 얻었으니, 만고의 명의 유의태가 이렇게까지 변해버릴 수 있을까. 여하튼 김병욱 PD의 손 위에서 이미 그렇게 되었다.
반면 박해미는 신세대 한의사다. 초음파 사진이나 CT를 적극 활용하며, 다양한 학회나 의료봉사 등에 참가하며 왕성한 활동력을 자랑한다. 자연히 최신 지식에 밝은 것도 며느리 박해미고, 대외적으로 인정받는 것도 며느리 박해미다. 썰렁한 이순재 원장의 진료실과 대조적으로 늘 예약손님이 바글바글하고 치료 효과도 좋다. 대통령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는 당당함과, 매사에 사리분별이 확실한 성격으로 늘 쾌활해 보인다. 그 탓에 시어머니로부터 ‘싹퉁바가지’란 별명을 얻었지만, 그녀는 시어머니가 자신을 ‘싹퉁바가지’라 부른다는 사실을 목격하고서도 여전히 주눅들지 않는다. “어머님, 저 욕하고 다니세요? 제가 뭘 잘못했는지 알려주세요. 그래야 제가 고치죠.”
과장되었지만 유쾌한 우리 한의학의 자화상
모르긴 몰라도 시트콤의 배경을 한방병원으로 설정하기 위해, 김병욱 PD가 상당히 사전 조사를 많이 했음에 틀림없다. 이순재가 내뱉는 대사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처럼 기괴하고 우습게 들리지만, 놀랍게도 이순재는 실제로 한의대 교과서에 쓰여 있는 말을 그대로 읊고 있는 것 뿐이다. 심지어 한의사나 한의대생들끼리 학술적인 대화를 나눌 때도 이순재의 대사와 거의 다름없는 ‘안드로메다어(語)’가 거침없이 튀어나온다. “간기가 울결되어 기혈이 통하지 않고……” “식체로 인해 비위의 기운이 상하고……” 교과서에 그렇게 쓰여 있으니 그렇게 튀어나올 수 밖에.
물론, 원로 한의사들이 시트콤의 이순재처럼 진단 능력도 없고 치료 능력도 없는 퇴물인 것은 결코 아니다. 이 부분은 시트콤에서 재미를 위해 과장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완전히 환상 속 얘기인 것 또한 물론 아닌 것이, 실제로 한의학계가 처한 상황이 이순재가 처한 상황과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소위 ‘전통 한의학’이 내뱉는 안드로메다어는 보통 사람들과 전혀 다른 패러다임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보통 사람들이 듣기에는 그냥 웃음만 나오는 헛소리로 들린다. 소통의 단절이다. 이제 환자는 더 이상 알아듣지도 못할 이상한 소릴 늘어놓는 원로 한의사 이순재를 찾지 않는다. 그런데 작금의 이 위기 상황에서 원로 한의사 이순재는 자기 계발과 환자와의 소통을 위해 노력하긴커녕, 바둑과 잠 따위로 남는 시간을 때운다. 한의학계의 위기 의식 부재와 무기력함, 무능력함도 그대로 닮은 모습이다.

젊은(막상 그리 젊지만도 않지만) 한의사 박해미는 이순재의 정 반대 지점에 있다. 그녀는 꾸준한 학회 활동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끊임없이 계발하고 있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환자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류의학(Conventional Medicine, 서양의학)계의 의사들과도 거침없이 친분을 쌓아가며, 의료 봉사 활동 등을 통해 자신의 대외적인 가치도 드높여간다. 의사나 외국인 CEO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신뢰하며, 환자들도 이순재 대신 그녀에게 진료받기를 원한다. 그녀는 당당하고 이성적이며 끊임없이 노력하기까지 하는 젊음의 상징이다. 원로 한의사가 폼 잡으며 진맥을 한 끝에 내린 오진(誤診)을 거침없이 뒤집는 그녀야말로 한의학계 개혁과 혁명의 상징이다.
더 많은 박해미가 필요하다
그러나 여전히 한의학계는 원로 한의사 이순재의 것이며, 젊은 한의사 박해미의 것이 아니다. 학생들이 원로 한의사 이순재를 원하기 때문이 아니라, 소위 ‘제도권’이라는 한의과대학이 다들 이순재의 교육만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재야의 소위 ‘선생님’이라 불리는 한의학자들은 말할 것도 없어서, 이순재보다도 훨씬 더 늙은 학문을 가르치는 중이다.
그래서 그 재야의 ‘선생님’에게 찾아가서 한의학을 공부하는 다른 학우들에게 물어보았다. “정말 그 ‘선생님’의 방법이 좋아서 거기까지 찾아가서 배우는 거냐?” 하고. 그랬더니 대답이 뜻밖이었다. 천만에, 라는 것이다. 그는 박해미의 방법, 즉 최소한의 체계를 갖추고 있고 합리적이며 (아주 넓은 의미에서) 과학적으로 정립된 방법이 있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선생님’의 공부방법을 때려 치울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 ‘선생님’의 방법, 이순재의 방법이 이해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 방법을 선택한 것은 –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그는 그 선생님이란 사람이 TV나 매체에 나와 이상한 ‘안드로메다어’를 늘어놓을 때마다 한의학이 그만큼 못 믿을 물건으로 전락하는 것 같아 괴롭다고도 했다.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대안이 없으니 학생들은 ‘안드로메다어’를 늘어놓는 ‘선생님’들에게 가서 배우고, 그럼 그 ‘선생님’은 더 유명해져서 TV나 매체에 출연하며 계속 ‘안드로메다어’를 늘어놓는다. 그럼 그 ‘선생님’은 더 유명해지고, 학생들이 더 많이 찾아간다. 이 악순환 속에서 한의학이란 몸통은 계속 찢기고 베어진다.
그 현실을 직격했기 때문에 <거침없이 하이킥>의 블랙코메디가 더 유쾌하게 느껴졌던 것일런지도 모른다. 원로 한의사 이순재를 존중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다. 그러나 엄연히 말해, 현실에서도 이미 원로 한의사 이순재의 권위는 무너졌다. 학생들은 안드로메다어를 늘어놓는 이순재를 더이상 존중해야 할 선배로 보지 않는다. 대신 박해미처럼 그의 철옹성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볼 때, 이순재의 안드로메다어는 잘못되었고 학생들의 혁명이 옳음에 분명하다. 현재 한의학이 당면한 문제는 소위 ‘천지자연의 이치와 옛 성인의 가르침’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가 아니라, 그것이 동시대의 사람들을 설득시키고 있는가 – 아니면 비웃음을 사고 있는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슴아프게도, 퇴물이 되어버린 이순재와 승승장구하는 박해미는 어느정도 학생들이 품고 있던 본심이 극화된 것이기도 하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더 많은 박해미’의 출현을 원한다. 싹퉁바가지처럼 당당하고, 그 당당함에 걸맞는 실력을 갖춘 한의사, 대외적으로도 활발하고 끝임없이 정진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드높이는 한의사. 진실로 그 날이 온다면 – 사실 FTA가 체결되어 면허가 상호 인정되든 말든 한의사들의 밥그릇과는 큰 관계가 없어질런지도 모른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더 많은 박해미가 출연하여 이순재의 방식을 무너뜨리고 진짜 ‘현대적 학문’으로써 한의학을 정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는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나의 어떤 스승들과 끝없이 정진하는 학우들을 믿는다. ‘재야의 선생님’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학우는 말미에 한 교수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거명하며, “이런 교수들이 많아지고, 이런 방법론이 확실히 정립되기만 한다면 더이상 ‘선생님’들의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릴 들을 필요가 없다”고까지 했다. 그 날이 진실로 오기를 바란다.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