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불현듯 떠오른 것처럼 한희정의 목소리를 다시 들었다. 더 더 밴드의 <슬픔>. 스무살 처음 들었던 그녀의 목소리는 아직도 소름끼치도록 아름답게 들린다. “희뿌연 담배 연기만 나를 숨쉬게 할 뿐…….” 아, 나는 스무살의 괴로웠던 날들을 이 노래로 견뎌왔었구나. 세상에 그득히 떠돌아다니는 산소로는 도저히 숨쉴 수 없어, 담배 연기를 폐부 그득히 들이마시고서야 겨우 산소를 함께 끌어들일 수 있었던 그 암담한 날들이 이제서야 다시 뇌리에 떠오른다.

한희정의 목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축복이다. 하루 종일 뿌연 담배 연기 속에서 숨을 쉬어야 했을 스무살의 난 다행히 담배 대신 다른 것을 선택했다. 그 대체재인즉, 바로 그 뿌연 연기 이상의 중독성을 지닌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그녀는 나 대신 나의 모든 슬픔을 노래했으며, 나 대신 나의 모든 절망을 쏟아냈다. 그녀가 대신 울어주었으므로, 나는 내 슬픔을 그만큼 덜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이란 좁은 땅에서 그녀같은 보컬리스트를 만난 것이 어찌 축복이라 아니할 수 있으랴.

스무살의 난 날 둘러싼 작은 세상에서 “아주 작은 록스타”가 될 꿈에 부풀어있었다. 은유가 아니라 정말 작고 초라한 창고같은 세상이었지만 – 당시의 난 정말 음악을 사랑했고, 또 처음 만난 무한한 음악의 세계에 푹 빠져 있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만족할 수 있었다. 음악만 있다면, 그게 설령 엉망으로 늘어진 기타 리프라 해도, 혹 흔들릴대로 흔들리는 스네어의 찢어지는 소리라 해도 수 시간동안 웃고 즐거워할 수 있었다. 그 음악으로부터 절망한 것은 일 년여가 지난 후의 일이다. 난 세상의 어떤 음악도 음악 그 자체만으론 존재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 창고같이 좁은 세상에서, 사람들은 음악을 음악 그 자체로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음악은 그저 잠시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거나, 새 여자친구를 만들기 위한 노래방용 18번이거나 할 뿐이었다. 나는, 가지고 있던 장난감을 잃어버린 아이처럼 소리치고 절망했다. 온 세상의 음악을 저주할 수 있을 것처럼 떠들어댔다. – 그 결론은 이미 이야기했다. 난 한희정의 목소리로부터 축복을 얻었다. 온 세상의 음악을 저주할 수 있을 것처럼 떠들어댔지만, 결국 음악을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음악은 스무살의 나를 구원하였으되 세상은 구원하지 못한 것 같다. 한희정과 함께 날 구원해 준 또 한 사람의 음악가, 이장혁의 경우다.

김규항은 “이장혁같은 뮤지션이 웹디자인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은 비극”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이장혁의 노래 <스무살>을 소개하며, 아주 단순하게 이 노래를 묘사했다. “좋은 노래”라고. 나는 공감했다. 이 노래는 좋은 노래다. 이 거짓 상찬이 넘쳐나는 시대에, 누군가가 굳이 그것만으로는 <스무살>의 가치를 잘 모르겠다고 얘기한다면, 나는 이렇게 다시 고쳐 말하겠다. “위대한 노래”다. 그러나 막상 그 노래를 만든 음악가 이장혁은, 최근의 일기에서 마치 김규항의 그 말을 받기라도 하듯 이렇게 얘기했다.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든 때는, 바로 너무나 멋진 노래를 들으면서 일을 할 때다.” 이장혁의 그 글을 읽는 순간 나는 무언가 큰 잘못을 한 것 같은 죄책감에 빠져들고 말았다. (정작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소심한 맘에 입조차 떼지 못할 것이면서도) 그에게 사과 한 마디를 전하기 위해, 그를 우연히나마 만나고 싶어졌다. “미안합니다. 스무살의 내게 진심어린 편지를 건네주었던 당신에게, 정작 나는 아무 편지도 건네지 못했음을. 이 비극 앞에서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내 곁에는 참 축복같은 노래들이 많다. 검은 구멍으로 침잠해가던 날 끌어올려준 그들에게 보답만 할 수 있다면야, 나는 수많은 팬덤의 증오와 저주를 감내하고 이 땅의 수많은 ‘가짜 뮤지션’들에게 모든 독언을 퍼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내가 설령 백만 번을 그리한들 내게 쌓이는 것은 오직 업보 뿐이요, 그 축복같은 음악가들에게는 아무 득도 없을 것이니. 그래서 나는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음악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스무살로부터 수 년 후, 불현듯 생각나 다시 찾은 나의 노래들이여, 그들이 내게 준 축복을 아무 보답도 없이 순전히 받아들일 뿐이다. 음악이여, 나의 축복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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