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부론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Adam Smith 지음(1776), 김수행 옮김(1996)
동아출판사

공급과 수요의 법칙, 보이지 않는 손, 임금/이윤/지대이론에 이르기까지, 아담 스미스는 사실 그 자신이 경제학의 기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신화적 인물이다. 그 탓에 그의 저작인 <국부론>도 아직까지 여기저기서 아담 스미스의 이름 하에 인용되곤 하는데, 대부분의 인용이 그러하듯이 이 역시 대부분 작자의 세계관에 끼워맞춰진 재구성일 경우가 많다.

<국부론>을 본격적으로 읽으면서 놀랐던 것은, 이 책이 생각보다 훨씬 심도있는 철학적 고민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느끼면서였다. 어떤 경제학도들의 믿음과 달리 이 책은 자유주의의 신학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국부론>은 보호받지 못하는 소수자에 대해 지극히 우호적이고, 기득권을 가진 소위 경제인이나 쁘띠부르주아에 대해 의외로 공세적이다.

물론 <국부론>이 시장경제와 수요/공급의 법칙의 뛰어남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아담 스미스가 이러한 시장경제의 적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은 정부의 복지 정책과 노동자들의 투쟁이라기보다, 오히려 기득권을 가진 자들과 그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맑스 식의 표현을 빌자면) “부르주아지의 집행 위원회”로서의 국가다. 예를 들어, 임금을 인상시키려는 노동자들과 임금을 인하하려는 사용자들의 싸움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은 노동자 대신 사용자를 비난하는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국부론>에 따르면, 노동자들이 자신의 임금을 인상시키기 위해 행하는 담합은 (사용자의 담합에 비해) 극히 드물지만 가감없이 드러나고 쉽게 비난받는다. 그러나 사용자들이 노동자들의 임금을 인하시키기 위해 행하는 담합은 거의 항상 행해지지만 잘 숨겨져 있어 거의 비난받지 않는다. 사실 이런 <국부론>의 논지는 오늘날의 노동운동을 바라보는 친노(親勞)파의 시선과 오히려 유사하며 아담 스미스를 아버지로 추앙하는 경제학도들의 논지와 다르다. 이러한 <국부론>의 논조는 구빈법(The Poor Law) 등에 대한 설명에서도 유지되며, 도제 제도에 대한 설명은 오늘날의 쁘띠부르주아 이익집단에 대한 강력한 비판으로 비치기도 한다.

<국부론>의 방대한 저술을 짧은 감상으로 풀어내기는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다. 게다가 한 달이 넘게 <국부론>을 정독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했지만 결국 완독엔 실패했으니, <국부론>과 아담 스미스에 대해 설을 풀 자격조차 없는 셈이다. 하지만 얘기하고 싶다. <국부론>이 나온지 긴 시간이 지났고, <국부론>의 내용들은 이제 상식이 되어버렸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국부론>은 뻔한 소리만 반복하는 지극히 재미없는 고전으로 평가절하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읽은 <국부론>에는 여전히 수많은 의의가 담겨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학을 “인간의 얼굴을 잃어버리기 쉽상인 학문”, “어두운 학문”이란 식으로 얘기한다. 하지만 어리석은 생각으로, 경제학의 시작은 오히려 인간과 소수자에 대한 끝없는 애정에서 비롯되었다. <국부론>에서 아담 스미스는 오히려 노동자들의 담합을 옹호하고 대신 사용자들의 드러나지 않는 ‘진정한 담합 행위’를 적발해내며, 시장을 옹호하면서도 사용자들의 담합 및 독점 행위가 그 시장의 효율성을 혼탁하게 할 것을 우려했다. 구빈법이 효율적인 관리의 미명 아래 빈민들을 옭죄고 차별대우함으로써 얼마나 큰 모순을 야기했는가를 고발했으며,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시장의 원리를 부정하려드는 세태를 비판했다. 어쩌면, 스미스에게 있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핍박받는 이들에 대한 신의 손이었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문제는 시장 실패가 아니라, 자신의 뜻대로 마음껏 시장을 왜곡하다가, 조금만 불리해지면 그제서야 “시장! 시장!”을 외쳐대는 바로 그 기득권자들, 바로 그 야비한 노인네들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 우파가 지향해야 할 바와, <국부론>이 꿈꾸던 이상적인 시장은 무엇일까? 책은 언제나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명상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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